IOS 26000시대의 한국 기업의 새로운 과제

21세기 세계경제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새로운 책임의 시대(A New Era of Responsibility)'를 표방했다. 그리고 월가에 금융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며칠 전, 집권당이 된 영국의 신임 수상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책임의 리빌딩을 표방하고 그것을 추진하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사회적 책임은 21세기의 새로운 화두 ‘책임’이 화두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금까지 책임은 종교에서 또는 윤리학자, 도덕운동가들이 묻던 것이었고, 차츰 NGO에서 책임을 물었는데, 이것이 점차 정치, 경제, 금융, 기업의 한 복판으로 들어와서 이제는 책임이 경제와 기업의 중심 화두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회적 책임이 인류시대를 이끌어나가는 기본 화두가 된 것이다.

SR은 기업경영만이 아니고 여러 부분에서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업경영에서는 ISO26000으로 사회책임에 대한 세계 표준이 지난 5월 코펜하겐 회의에서 사실상 확정되었다.

앞으로 몇 가지 준비과정을 거쳐 내년 1월 1일부터 실시하는 것으로 확정됨으로써 본격적인 ISO26000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2005년을 전후로 각종 언론에서 ISO26000, SR을 특집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나는 이것을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정부에 준비를 권유했고, 관련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 이번 코펜하겐 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실제 한국에서 열리는 것으로 내정되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정부의 입장이 소극적으로 돌아섰고, 작년 퀘벡회의에서 우리나라는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ISO26000은 세계적인 대세이고, 한국이 하지 않겠다고 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참여한 76개국 대다수가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세계의 중요한 경제단체, 환경단체들이 여기에 가입해 세계적인 바람이 불고 있다. 결국 한국도 이런 흐름에 따라 금년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SR에 소극적인 한국 기업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매출액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런데 59%의 기업이 여기에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기업은 5% 미만이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 조사 보고서의 제목이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서의 ISO26000’이다.

일본은 같은 형식의 보고서 제목이 ‘새로운 무역의 찬스로서의 ISO26000’이다. 한국에서는 80~90개의 기업이 지속가능리포트를 내고 있다. 일본은 약 1500개의 회사가 지속가능리포트가 아닌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리포트를 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기업이 좋은 상품을 싸게 개발해서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면 됐지 무슨 사회적 책임이냐’ 하는 거부반응이 있다. 우리 기업의 일반적인 정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속가능과 기업의 사회책임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의 대세는 CSR이 분명하다. ISO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이 아니고 모든 사회적 주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으로 CSR에서 C를 빼고 SR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래서 ISO26000은 SR에 대한 국제표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 노동자, 소비자, 금융, 정부, NGO 등에서 모두 SR을 기본적인 컨셉으로 받아들이고 SR끼리 하나의 시스템이 이루어지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기업이 CSR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
SR 중에서 CSR만 조금 더 말씀드리겠다. ISO26000의 기본구조를 보면 SR의 핵심 주제가 조직의 지배구조이다. 그 중에서 인권, 노동관행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고, 환경, 공정운영 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 및 지역사회의 발전 등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핵심 주제이다.

기업만이 아니고 모든 단체가 짊어져야 할 사회책임은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회적 책임의 7가지 원칙은 설명책임을 져야 하고, 투명성을 가져야 하고, 윤리적 행동,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존중해야 하고, 국제행동 규범존중, 인권존중 등이다.

7가지 원칙을 각 개별 하나하나의 이슈에 적용해서 이것을 국제표준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종래의 ISO9000, ISO14000, ISO22000 등의 여러 강물들을 종합한 거대한 통합의 바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ISO는 대부분 인증제였지만 ISO26000은 검증제이다. 각 기업에 가이드라인을 줘서 ISO26000을 잘 하고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인증제보다 매우 약한 것 같지만 사실 여기에 무서움이 있다. 이번 도요타자동차 사태에 대해 소비자의 검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매스컴을 통해 충분히 목격했을 것이다.

세계 굴지의 의류업체 중 하나인 미국의 GAP은 연간 매출액이 한화 3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인도의 하청업체에서 아동의 저임금, 노동력 착취 문제가 NGO활동에 의해 발각되면서 세계적으로 GAP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한 달 만에 25%의 매출액이 감소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감소세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GAP도 인증 받은 것이 있겠지만 세계 소비자들의 검증에 실패하면 경영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세계의 소비자, 세계의 NGO, 세계의 시민사회, 세계의 노동자의 평가에 기업의 운명을 맡기는 상황이 되었다. 그 평가가 기업의 이익을 좌우하는 상황에 대응해서 CSR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착한 자본주의 하에서는 착한 일을 할 때는 남이 모르게 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기업이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CSR을 하는 것은 PR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이를 마케팅으로 활용해도 좋다. 그리고 SR의 결과가 재무적 성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한 경영기법 없이 SR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세계화시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업이 가격경쟁, 품질경쟁만 해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여기에 사회적 활동, 이미지 활동, 윤리활동, 봉사활동, 소비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 세계 기후문제에 대한 책임 등이 포함되어서 상품의 이미지를 결정하고 사회적 평가를 결정하고, 그래서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실제 판매로 연결되어야 한다. CSR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 부는 SR바람
금융에도 SR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적으로 헤지펀드의 비중이 감소하는 반면 사회책임투자 펀드(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SRI펀드의 세계 비중이 5조 달러가 넘는데 반해 헤지펀드는 3조5천억 달러이다.

CSR 지수가 높은 기업에 들어가는 SRI 자금이 한국에 대량으로 들어오면 한국경제의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SRI 자금이 한국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의 선진화의 핵심 문제는 SR에 있다는 점을 정부와 기업체는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회책임소비(SRC)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의 제품은 사지 않겠다, 혹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제품은 값이 좀 비싸더라도 사겠다는 것이 SRC이다.

세계 소비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제품가격이 15% 정도 비싸다면 환경에 유리한 기업의 제품을 사겠다고 한다. 소비자 권리를 찾던 소비자들이 요즘에는 소비자 책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비엔나대학의 마틴 교수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대기업은 머지않아 유럽의 NGO, 소비자단체, 노조의 거대한 반대운동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경고를 무시하다가는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겪은 사태를 똑같이 겪을 수 있다는 경고메시지다.

기업이 CSR을 하게 되면 그 기업체의 노동자도 사회책임노동(SRL)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국도 그렇고 한국도 이제는 사회책임노동이라는 형태의 노조가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되니 정부가 SRI 자금에 대해서 조세상 이득을 주지 않을 수가 없고, CSR을 열심히 하는 기업에 대해서 이득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런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회책임정부(SRG)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흥부자본주의시대의 도래
내가 가령 천만원의 돈을 가지고 착한투자를 하고 싶다고 하자. 그래서 착한기업에 투자하는 SRI펀드에 이 돈을 맡겼다.

그럼 SRI 펀드는 이 돈을 CSR을 잘하는 기업에 투자한다. 그러면 그 기업의 노조가 SRL로 순응을 한다. 소비자단체는 이런 기업의 제품을 사준다.

그리고 정부는 조달시장을 비롯해서 조세금융상의 혜택을 준다. 그럼 CSR을 잘하는 기업은 이익을 많이 보게 되고, 착한 투자를 한 나에게도 배당이 많이 오게 된다. 착한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번다는 상황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벌어지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대박을 터뜨린다는 흥부전의 스토리가 흥부전에서는 다소 신화적으로 비쳐졌지만 이제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사회책임경영, 사회책임노동, 사회책임소비, 사회책임투자, 사회책임정부 등이 서로 매트릭스로 묶이고 시스템화하고, 사회경제체제가 된다면 이것이 사회책임 자본주의가 된다.

사회책임자본주의, 흥부자본주의가 오고 있다. 세계는 흥부의 신화가 시스템적으로 실현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또 그렇게 가야한다.

정부나 한국기업은 이것을 소극적으로 무역장벽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코펜하겐 회의에서 중국과 인도가 반대한 것은 그 기준을 따라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힘든 면이 있지만 이번 회의에서 기준이 낮아져서 조금만 노력하면 맞춰나갈 수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유럽과 동일한 수준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게는 이것이 위기가 아니라 기회이다.

ISO26000을 잘 활용한다면 한국기업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봄바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피하면 한국기업에 대한 북풍이 될 것이다. 이를 외면하는 일을 정부나 기업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형섭 기자 070@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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