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혁 명예교수

"침변서(枕邊書)는 필요할 경우 언제나 읽을 수 있도록 베개 옆에 놓아두고 수시로 들춰보는 양서(良書)를 일컫는다. 실제로 장개석은 두보시집과 성경을, 모택동은 채근담과 용제수필을, 호지명은 목민심서를, 케네디는 슈바이처전집을 각각 자신의 침변서로 삼았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모택동이 사망 13일 전에 잠시 정신을 차리자 제일 먼저 찾은 다음 죽는 순간까지 읽었던 책이 바로 용제수필이었다. 일본에선 명치유신 이후 서구식 보통선거와 대의원제도가 도입되고 후보자가 난립하자 정계 진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명나라의 석학인 여곤(呂坤)의 저서 신음어(呻吟語)를 반드시 읽도록 했다. 그것은 후보자의 교양과 안목, 나아가 판단력과 인생관의 질적 수준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였다."

퇴계학과 율곡학의 대가이자 제왕학(帝王學)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김유혁 단국대 명예교수는 침변서 이야기로 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자칫 난해하고 고루하게 읽혀질 수도 있는 제왕학에 대한 대중적 이해의 단서를 현대사회 리더들의 침변서에서 찾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참고로 퇴계 선생은 송나라 거유 진덕수의 심경(心經)을 침변서로 삼았다.

"제왕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제왕의 유학적 개념부터 살펴야 한다. 고대 중국의 최고 리더를 뜻하는 단어에는 황(皇), 제(帝), 왕(王) 등 3가지가 있다. 우선 황(皇)은 명일자(明一者)라고도 하는데, 명일은 천리(天理)와 경(敬)과 태극(太極)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제(帝)는 찰도자(察道者)라고도 하는데, 찰도는 천리로 통하는 정도(正道)를 바르게 살펴서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王)은 통덕자(通德者)라고도 하는데, 통덕은 덕성(德性)으로 달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황제(皇帝)는 명일자(明一者)와 찰도자(察道者)의 자질을 겸비한 지도자를, 제왕(帝王)은 찰도자(察道者)와 통덕자(通德者)의 자질을 겸비한 지도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황제와 제왕은 이덕시인(以德施仁)을 치도(治道)의 기본으로 삼았다."

제왕에게 애민보다 앞선 과제는 없어

그러나 요순시대의 이상적 제왕학은 지속되지 못했다. 오패(五覇)와 칠웅(七雄)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제왕학의 성격과 양상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춘추시대의 군주들은 덕치를 지향하되 군사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모덕병승(謀德兵勝)을, 전국시대의 군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챙기는 이모구승(以謀求勝)을 추구했다.

"그렇다면 제왕의 기본덕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행동강령부터 살펴보려 하거니와 명목달청(明目達廳), 창왕찰래(彰往察來), 상통하달(上通下達)이 있다. 명목달청은 율곡 선생이 상소를 올리면서 자주 인용했던 표현인데 고사(故事)는 다음과 같다.

춘추시대 제환공이 재상인 관중에게 성군이 되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관중은 장목(長目, 긴 안목을 지녀라), 비이(飛耳, 궁궐 밖 백성의 소리를 들어라), 수명(樹明, 투명성 있는 사회를 건설하라) 등 3가지 항목을 실천하라고 답했다. 강직함 때문에 당태종의 정적에서 직간을 서슴지 않는 재상이 된 위징은 삼경훈(三鏡訓)을 올렸는데, 동경(銅鏡, 왕 자신을 살펴라), 사경(史鏡, 역대 왕조의 흥망을 공부하라), 인경(人鏡, 표준이 될 만한 인재를 구하라)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상통하달에 얽힌 다음과 같은 고사도 소개했다. 제경공이 사냥하러 나갔다가 산에선 호랑이를, 늪에선 뱀을 봤는데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재상 안영에게 자문을 구했다. 공자의 제자이기도 한 안영은 "현인이 있는데 알지 못하고, 현인을 알았지만 기용하지 못하고, 현인을 기용했지만 믿고 맡기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불길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이번에는 일(一), 도(道), 덕(德)으로 구성된 제왕의 심법요목을 살펴볼 차례이다. 송나라 육현(六賢) 중 한 명인 주렴계 선생은 도와 덕를 일컬어 각각 동이정왈도(動而正曰道, 움직이되 바르게 처신하는 것이 도), 용이화왈덕(用而和曰德, 인재를 등용하되 조화롭게 하는 것이 덕)이라고 풀이했다.

나아가 도와 덕은 각각 중용에 나오는 본립도생(本立道生, 근본이 바로 서면 길은 스스로 열린다), 논어에 나오는 위정이덕(爲政以德, 정사를 덕으로 한다)과도 연결된다. 위정이덕에 이어지는 구절이 비여북신 거기소이 중성공지(譬如北辰 居其所而 衆星共之, 비유컨대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 모든 별이 그를 향하는 것과 같다)이다. 지도자가 신앙의 자유는 누리되 특정 종교를 고집해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역시 송나라 육현 중 한 명인 장횡거를 인용해 제왕이 버려야 할 4가지 항목, 즉 4절(四絶)에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제왕에게 애민(愛民) 이상으로 앞선 순위의 과제는 있을 수 없다"면서 "제왕이 가슴 속에 4가지 사욕(私慾)을 품고 있다면 애민이 자리할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왕이 끊어버려야 할 4가지 항목은 무엇일까?

"장횡거 선생은 의유사(意有思, 배타적 주장을 숨기는 것), 필유대(必有待, 속으로 뭔가 충족되기를 기대하는 것), 고불화(固不化, 아집을 숨기고 자기 변화를 회피하는 것), 아유방(我有方, 자신의 존재와 방위를 드러내는 것)을 제왕이 반드시 끊어버려야 할 4절이라고 봤다. 한편 동서와 고금을 망라하고 제왕은 공통적으로 직언을 기피하는 증상을 가지고 있는데, 명나라의 여곤은 자신의 저서 신음어에서 '4상이 건재해야 직언 기피증이 사라진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4상이란 각각 조상(朝常, 내각에 기상이 서 있고 각료들이 기강을 지킨다), 관상(官常, 관료들이 법을 잘 지킨다), 가상(家常, 가문 안에서 상하간 질서를 잘 지킨다), 신상(身常, 스스로 일거와 일동에 있어서 중용의 도를 지킨다)을 말한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제왕학 공부해야

그러면서 김 교수는 위장전입, 차명계좌, 탈세 등의 단어로 점철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관련 보도를 언급했다. 옥(玉)과 양(羊) 이야기도 넌지시 꺼냈는데, 몇 년 동안 물에 담겨 있어도 늘지도 줄지도 않는 옥, 아무리 많아도 당파를 짓지 않고 조용히 죽을 줄 알 뿐 아니라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양에게 인간이 배울 점이 많다고 꼬집는 것을 잊지 않았다.

"후한 말기 학자인 순열은 자신의 저서 신감에서 도비(導非), 아실(阿失), 시총(屍寵) 등 신하의 3가지 죄(臣有三罪)가 4상의 건재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도비란 무엇인가?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군주에게 주청하지 아니하고 군주로 하여금 판단을 그르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아실이란 무엇인가? 군주의 그릇된 판단과 실책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하여 직간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추종하는 것을 말한다. 시총이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잘못되어 가고 있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에 관하여 일언반구의 의견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방관하는 것을 말한다. 나카소네와 고이즈미 총리가 63세와 59세였을 때 내각 평균 연령은 68세와 63세였다. 연하의 총리가 자칫 삼죄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제왕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극기의 덕목을 소개했다. 삼죄의 폐해가 아무리 극심하다 해도 중요한 것은 역시 제왕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294권으로 구성된 제왕학 교과서인 자치통감의 저자인 사마광의 글에서 인용한 6난(六難). 김 교수는 천언(踐言), 방기(防欺), 거사(去邪), 임현(任賢), 득민심(得民心), 순천도(順天道)에 대해 설명했다.

"천언은 스스로 한 말은 실천한다는 뜻이다. 방기는 스스로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율곡이 퇴계에게 한나절 접견을 청했다가 2박3일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불기(不欺) 덕분이다. 거사는 바르지 않은 생각을 버린다는 뜻이다. 임현은 어진 인재를 등용한다는 뜻이다. 득민심은 국민의 마음을 터득한다는 뜻이다. 세종은 백성을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