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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부끄러운 대통령을 만나고 싶지 않다.
뉴스에이 황혜경 | 승인 2017.04.11 07:09
[뉴스에이=칼럼] 발달심리학에서 ‘메타인지’라고 자주 인용되는 용어가 있다.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한 인지능력을 뜻하는데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낼 것인지에 대해 아는 자기성찰과 객관화 능력을 의미 한다.
 
유력한 대선주자들의 과거의 직업(변호사, 의사, 교수, 기업인 등)을 보면 학업에 영향을 미친 메타인지가 뛰어났기에 학습전략에 성공했고 그래서 소위 학업성과측면에서는 인정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메타인지와 관련된 학습전략을 나누는 가운데 대학생 그룹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그런데 메타인지가 높으면 학습전략에 굉장히 효과적인 것은 이해가 가는데, 국가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믿고 지지해야하는 대선주자들의 메타인지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
 
한마디로 최근 대선주자들의 검증과정에서 드러난 말이나 글 또는 행동을 보며 스스로 자신을 객관화해서 성찰하는 ‘메타인지’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거다.

메타인지 향상을 위해서 살펴봐야 하는 인지적 한계 측면에서
   -혹시 자신의 기억수준을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일이 일어나기 전 에는 몰랐고 사후에 알았던 척 하는 건 아닌지
   -자신의 실행력을 과대평가하는 건 아닌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확증편향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작년엔가 개봉했던 영화 “동주”가 떠오른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시인 윤동주,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독립투사 송몽규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독립운동에 대한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송몽규
독립운동에 앞장서지는 못했지만 시인으로 신념을 지키고자 한 윤동주
 
영화에서는 부조리와 부도덕성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일본의 민낯을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부끄러워했던 윤동주에게 정지용 시인의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다”라는 대사로 작은 위로를 건넨다.
 
최근의 대선주자들의 “나는 정말 몰랐다.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라는 인터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지를 차라리 알면 좋겠는데 부끄러움을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외면하는 걸까?
 
이제는 정말 부끄러운 대통령을 만나고 싶지 않다.

뉴스에이 황혜경  careervalu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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