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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 하나님이 있는가? 국민일보 주최 대 토론회 개최
뉴스에이 이광원 | 승인 2018.05.14 07:09
10일 국민일보목회자포럼 주최 ‘현대신학 대토론’에 참여한 발제자와 논찬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소강석 국민일보목회자포럼 대표회장, 함세웅 전 가톨릭대 교수,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서철원 전 총신대 대학원장, 이형기 장신대 명예교수, 오영석 전 한신대 총장.
[뉴스에이 = 이광원 기자] 현대신학에서 신론을 공론화함으로 오늘의 한국교회에 신학의 발전을 모색하고자 국민일보 주최로 목회자포럼(대표회장 소강석 목사)은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옥 12층 그랜드볼륨홀에서 대토론회를 개최 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은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원로)가, 발제는 세계적인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서철원 박사(전 총신대 신학대학원장)가, 논찬은 오영석 박사(전한신대학교 총장),칼바르트의 신학에서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 소강석 박사(새에덴교회담임), 현대 신학에는 하나님이 없다’에 대한 논찬을 ,이형기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함세웅 박사(전카톨릭대학교 교수/정의구현사제단 소속)등이 각각 논찬했다.

이날 토론회는 극명하게 의견이 나뉘어졌다. 서교수를 비롯 보수신학자들은 “현대신학자들의 신학사상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 반면 현대신학자들은 “서교수가 잘모르거나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서철원 박사는 “현대신학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기조 발제를 통해 “근세 신학의 아버지인 슐라이어 마허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이 믿는 ‘창조주 하나님’, ‘자존(自存)하신 하나님’을 신학에서 제거했다”며 “이는 칸트의 인식론이 영향을 끼친 결과로 칼 바르트와 폴 틸리히, 칼 라너, 위르겐 몰트만까지 영향을 끼쳤다”면서 “5명의 현대신학자들의 신학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서 박사는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가 지식의 구성 요소를 새롭게 제시하므로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신학을 전개함에 철학적으로 전개하여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역사적 신학이 전적으로 달라졌다”면서 “칸트 인식론은 신학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며 “20세기 들어와 바르트, 틸리히, 몰트만, 라너도 신학을 인간 의식의 변형으로 만들어 신학에서 창조주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말하고 “이들 모두 20세기 대표적 철학인 실존주의 철학으로 신학을 했지만 그 바탕은 칸트의 인식론이었다”고 비판했다.

서 박사는 “슐라이어마허에 있어서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하나님, 창조주가 아니고 인간의 자기의식의 변형일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곧 신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순전히 의존적이라고 느끼는 것을 발언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서박사는 슐라이어마허의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슐라이어마허는 삼위일체 교리가 공식화될 때 이교도들이 대거 교회로 들어왔으므로 신을 다수로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라며 “유일신 교리를 다신교로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삼위일체 교리가 생겼다는 것이라”면서“인간 예수에게 있는 순전한 의존 감정을 객관화하여 아들로 만들었고, 교회에 있는 순전한 의존감정을 객관화해서 성령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앙론에 아무런 자리를 가질 수 없다”고말하고 “결론적으로 “슐라이어마허는 신 의식으로 삼위일체 교리와 성육신의 교리를 완전히 해소했다.”며 “그는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한다. 아버지만 계시자로서 하나님이고 아들과 성령은 계시 작용의 과정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서 박사는 이어 칼 바르트의 신학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바르트 신학에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서 박사는 “바르트는 전통적인 삼위일체 교리 대신 하나님, 유일한 신적 존재로 출발한다.”며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한 인격적 하나님이시다. 그는 유일한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하나 곧 최고의 유일한 법적 주체라고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러므로 바르트는 아버지의 위격과 아들의 위격이 협약을 맺었다는 견해는 수용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삼위 하나님의 첫째와 둘째 위격이 서로 협의하고 서로에 대해서 의무를 지우는 법적 주체라고 제시하는 것은 신화라는 것이다.”며 “발트는 하나님은 삼위가 아니고 한 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피조물과 언약관계를 세워 인간과 교제하기를 원하셨다고 한다. 곧 사람과 사랑의 교제를 가지시려고 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바르트는 세 위격을 주장하는 것은 다신교이고 우상이라는 것”이라며 “하나님은 한 신적 존재이므로 세 위격 혹은 두 위격이 아니라 한 인격적 한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위격은 존재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 박사는 특히 “하나님이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바르트의 신학에는 자존하신 하나님의 존재가 없다. 하나님의 존재는 행동이고 사건이다. 이 행동 배후로 돌아가서 그 자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는 계기가 없다는 것이기에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 존재하시는가? 바르트는 하나님은 아들의 인격 안에 존재하신다고 한다.”며 “바르트에게 아들은 인간 예수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존하시는 하나님은 바르트에 없다.”고 주장했다.
 
서 박사는 폴틸리히(1886-1965)는 “틸리히는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신학을 완전히 변조했다. 하이데거 철학의 중심주제는 존재와 존재자이다. 존재는 모든 존재자를 포괄하는 포괄자로 보았다. 이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도식을 틸리히가 신학에 그대로 적용했다.”며 “틸리히는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자이므로 궁극적인 존재 곧 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존재 자체를 신으로 규정했다.”고 비판했다.
 
서 박사는 가톨릭 신학자 칼 라아너(1904-1984)에 대해서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의 중심사상인 존재와 존재자와의 관계로 로마교회의 신학을 완전히 현대화했다.”며 “특히 바티칸 공회의는 그의 신학에 근거하여 종교다원주의를 교리화하고 전통적인 신학을 다 버렸다.”고 비판했다.
 
서 박사는 “라이너에게 있어서 존재자체가 신”이라며 “신은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경배해왔다. 존재는 신비인데 존재자체라는 용어는 추성적 개념이다. 그래서 라아너는 존재를 존재자체로 말하지 말고 거룩한 신비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서 박사는 마지막으로 “희망의 신학”으로 한국 교회에 잘 알려진 위르겐 몰트만(1926-)에 대해서도 비판의 메스를 가했다. 서 박사는 “몰트만은 고대교회가 공식화한 삼위일체 교리를 전적으로 부정한다. 그 대신 버림받아 죽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삼위일체로 제시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몰트만에 의하면 예수는 한 가상적인 신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며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불렀어도 버림받아 죽었다. 버림받아 죽은 아들이 당하는 고통을 아버지가 내려다보면 그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 고통을 당한다. 몰트만은 아들에게서 고통이 나오는 것을 영이라고 지목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논찬에 나선 이들은 “서 교수가 잘 모르거나, 안다면 ‘의도적 왜곡’이라‘면서 “서 교수의 이러한 주장들에 반기를 들었다.

오영석 박사(전 한신대 총장)는 “바르트는 1965년 미국 ‘타임’과의 인터뷰에서도 ‘하나님은 존재한다’고 선언했으며. 그의 저서 ‘교회 교의학’ 교의학(9000쪽 이상)에서 그의 모든 수많은 저서들과 논문들과 로마서와 요한복음, 빌립보서 성서주석들에서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리스도론적인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며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의 뿌리와 근거를 성경에서 그 자신을 영원한 주 하나님 아버지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영원한 성령으로서 논의한다. 특히 삼위일체론을 말하지 않고서 계시개념을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며 서 박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어 오 박사는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삼위일체 교리의 중대성을 천명한 바빙크의 견해를 수용한다”면서 “바르트가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한다는 논자(서철원 박사)의 인식은 바르트의 삼위일체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밝히고 “논자가 203쪽이나 되는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을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다면 ‘바르트는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했다’고 보는 논자의 판단은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바르트가 자존하신 하나님도 없애버렸다’는 서 박사의 견해에 대해서도 “(바르트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외적인 행동과 관계와 자유로운 행동 속에 완전히 소진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이 모든 역사와 행동과 관계들을 초월해 영원히 자존하신 존재”고 반박했다.

이형기 박사는 논찬에서 “서철원 박사는 칸트가 하나님을 물자체로 보고, 불가지론에 빠진 것처럼 칸트 이래의 모든 자유주의 신학자들(슐라이어 마허, 바르트, 틸리히, 라너, 몰트만 등)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이 고백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그들의 신학에서 제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하여 나는 그것이 슐라이어마하의 신학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서 박사의 견해에 일부분 동의의 뜻을 밝혔다.
 
이 박사는 “바르트는 복음과 기독론에서 얻은 통찰로써 17세기 개신교와 가톨릭 신학의 객관주의와 슐라이어마허의 주관주의를 극복했다.”고 평가하고 “바르트는 기록된 말씀도 설교된 말씀도 저 중심내용, 곧 계시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혹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을 떠나서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형기 박사는 “칸트의 철학이 마허의 신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바르트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반박에 동참했다. 

가톨릭신학자인 함세웅 박사는 “‘현대신학에는 하나님이 없다’라고 지적한 서철원 박사의 (기조발제)제목에서 저는 하느님의 부재체험을 연상한다.”며 “이 지적이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고 깨닫는 상승과 은총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라너 신학은 ‘초월론적, 인간학적 기초신학’으로 부르고 있다”고 말하고 “이는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이었다”고 반론을 폈다.
 
함 신부는 특히 서 박사와 오 박사의 극명한 반대 주장에 대해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포용과 균형을 강조했다.
 
함 신부는 “가톨릭 신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 온 후 개신교의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칼 바르트의 신학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가톨릭 신학에서 볼 때는 화가 날 정도로 가톨릭신학에서 볼 때 비판적이었다.”며 “그런데 로마로 유학을 가서 신학을 하면서 바티칸에서 바르트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고 싶어 할 만큼 그의 신학 사상을 존경 할 만큼 대신학자였다.”고 말하고 “균형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소강석 목사는 박사의 위치보다는 현장 목회자로서 논찬을 진행하면서 서 박사 견해를 지지하는 논찬을 피력했다.

소강석 목사는 “몰트만의 후반기 저서를 살펴본다면 그의 삼위일체론에 자존하는 하나님이 없다고 100%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본다”면서도 “서철원 박사님은 현대 신학자 5명의 삼위일체론의 핵심을 논파해 그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은 없다고 결론을 내리셨다”며 “틸리히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타자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것과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에는 성경적인 하나님이 없다는 것, 칼라아너의 신학은 바르트처럼 성경적 삼위일체가 아니고 양태론적 경향이 있다는 서철원 박사의 견해에 동의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서철원 박사에게 소강석 박사는 “바르트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있는데도, 과연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또한 “몰트만의 삼위일체로는 삼신론적 입장으로 비판되며, 사회적 삼위일체론자로 평가된다.”면서도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에 자존하는 하나님이 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 않은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바르트는 17세기 정통주의와 20세기 초 개신교 근본주의보다는 물론, 16세기 칼뱅의 신학보다도 좀더 ‘복음’ 혹은 ‘예수 그리스도’(특히 종말론적 기독론)를 초점으로 하는 말씀의 3중성을 주장했다.”며 “오히려 루터신학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 현대신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유(有)는 무엇일까?” 그런데 왜 서철원 박사는 하나님의 무(無)를 주장했을까?

서철원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중보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없음, 삼위일체 부정을 제시해서 인준되었고,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선정한 20세기 100대 논문에 포함될 정도로 권위가 있다.

이날 대 토론은 결론을 얻기 보다는 토론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 참석자들의 입에서 나왔다.

특히 토론에서 어떠한 답과 결론을 얻기 보다는 현대신학의 신론에서 신의 유무(有無)를 논하는 토론이 열린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는 평가와 함께 이번 포럼은 개신교의 보수와 진보가 아닌 기독교 보수와 진보가 만났다는 점에서 다음을 기대하며, 아쉬운 것은 이러한 토론을 통해 급성장하여 짧은 시간에 세계교회를 놀라게 한 한국적인 신학을 소개 하는 자리까지 이어진다면 하는 입장도 나왔다.

뉴스에이 이광원  lwk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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