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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원장 칼럼 - 잊지 말아야 할 4.19 혁명이 주는 교훈
이광원 기자 | 승인 2020.04.20 21:56
칼럼니스트 이효상 
(근대문화진흥원 원장/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원장)
‘자유대한민국’ 건국이라는 기초를 놓았다. 그 레일(rail)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독교적 가치이었다.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가 건국대통령이자 초대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과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이다. 예를 들면, 반공과 기독교적 가치를 통해 6.25 전쟁을 치루며 공산화를 막고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다. 또 수천 년 뿌리를 이어온 지주-소작 제도의 타파 없이는 ‘평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1949년 국회에서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켜 농민 소작인에게 ‘토지분배’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또한 군종제를 도입하는 등을 통하여 군의 전력강화와 복음화를 이끌어 냈다.

이렇게 한국전쟁이 막을 내린 지 불과 7년이 지난 1960년대는 자유당 정권 집권 12년차였다. 그 당시는 한국의 경제적 수준은 매우 낮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이는 당시 교육수준이 높았던 것에 원인이다. 당시 문맹률은 4.5%정도로 굉장히 낮았으며 이 대통령은 초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규정, 전 국민이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놨으므로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런 시대적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를 1대, 2대까지만 제한했던 헌법을 바꿔 3대까지 연임하면서 아예 장기집권으로 가기위해 이대통령의 라이벌이던 죽산 조봉암을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 증거를 조작하여 내란죄를 뒤집어씌우고 재심을 청구하기도 전에 신속히 처형해 버렸다. 이 사건으로 민심이 여당이던 자유당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3.15 선거’이다. 전국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당시 이승만은 86세로 매우 고령이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부통령이던 이기붕이 이승만 사후 대통령을 승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상 유례없는 금권과 부정 선거에 개표조작까지 자행하였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자유당은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는데 성공했고 자유당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듯 했다.

그러나 아무리 말없는 국민들이라도 장기판의 졸(卒)도 아니고, 대놓고 부정선거를 하니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된다.

3월 15일 경남 마산에서 이에 반발해서 의거가 발생했다. 그때 남원에 사는 김주열이라는 중학생이 마산 상업고등학교에 지원하려고 친척들이 모여있는 마산에 갔다가 시위에 참여했고, 그리고는 18일 실종된 것이다.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아들이 사라졌으니 마산으로 가서 아들을 찾아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4월 11일에 마산 부두앞바다에서 김주열 군의 시신이 떠올랐다. 물속에 오래 있었으니 당연히 다 썩었고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경찰의 소행으로 밝혀지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격분하고 폭발하며 혁명에 불을 붙였다.

이에 4월 18일에는 고려대에서 들고 일어났다. 4월 18일, 서울에서 고려대학교 학생 3,500여 명이 "민주 역적 몰아내라"고 외치며 국회 앞에서 데모에 들어갔다. 그러나 평화적인 고대생들의 데모에 대해 권력에 찌든 자유당 정부는 정치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데모대를 습격, 10여 명의 중경상자를 내었다.

4월 19일은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린다. 이 날 경찰은 경무대에 몰려든 시위대를 향해 정부에서 귀가조치를 내렸지만 말을 듣지 아니하고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자 계엄령이 내려지고, 같은 날 3시 경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경찰들은 최루탄과 공포탄을 발포하며, 강경히 대응하다가 실탄을 쏘아서 시위대를 사살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권력을 지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시민들의 민주화의 열망은 꺼지지 않는 활화산처럼 힘껏 타올랐다. 이번엔 제자들을 잃은 대학교수들이 시위를 일으켰다. 4월 25일 대학 교수들이 시국 선언문을 채택하고 258명의 교수들이 시위를 벌였으며, 이를 본 학생· 시민들이 재차 시위에 합류하였다.

시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고 4월 26일에는 시위 군중이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학생 대표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하고 시국 수습 방안을 제안하였다. 사실 학생들은 이승만더러 선거를 재실시하라고 요구했다면, 교수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처음으로 이승만의 하야를 요구했다. 아무래도 교수들이 이렇게 나오자 자유당 정권은 항복하고 국회의원들의 사표 제출로 인해 더 이상 퇴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날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하야성명을 발표했고, 드디어 4월 27일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4월혁명은 ‘자유와 ’민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시민투쟁이자,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무엇보다 깨어있는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결국 무너뜨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3.1운동 이후 그 정신을 잇는 자유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혁명이었다.

영국의 정치가 존 달버그(John Dalberg-Acton,1834–1902)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말을 뼈 깊이 새겨야 한다. 정치가 권력을 추구하는 자리이지만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고 오직 권력만 탐한다면 그 오만한 권력에 국민은 견제와 균형을 요구하고 끝내는 저항한다는 것이다. 1960년 야심차게 장기집권을 획책하던 그 정권을 끝내려 죽음으로 이뤄낸 민주화운동이자 국민적 저항사건이 주는 4.19의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결국 자유 민주정치의 발전을 기대하였던 애국적인 학생과 시민들의 거센 시위는 부정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고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중요한 분깃점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의 원칙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잊지 말아야 할 4.19 혁명!, 60주년에 교회에 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부패한 권력에 침묵하거나 권력자의 편에 서면 안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시대를 읽고 정치가 부패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작은 목소리라고 포기하지 말고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자유와 민주화를 향한 저항정신, 시민의식이 건강한 사회 성숙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게 할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다이달로스는 떨어지는 새의 깃털을 보고 밀랍으로 부쳐서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기로 결심하고 발명한다. 다이달로스는 날개를 다 만들고 시험비행을 시작했고 그의 아들 이카로스에게 밀랍은 언제든 녹기 때문에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늘을 날수 있다는 자만감에 빠진 이카로스는 결국 밀랍이 녹아 바다에 추락하여 죽고 만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집권여당이 개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는데 힘으로 밀어 붙인다면 21대 총선결과는 축배를 들 일이 아니라 독배가 될 수 있다. 진보가 폭주하는 국정, 극단의 정치, 권력투쟁을 추구한다면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반대를 ‘적폐’로 몰고 국론을 분열 시키며 야당을 더 이상 궁지로 몰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정치에 다시 희망을 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제 집권여당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일의 민심은 아무도 모른다.

이광원 기자  lwk@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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