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학박사/문덕근 보성남초등학교장

당나라 정관 2년, 태종은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주는 그릇에 비유되고, 백성은 물에 비유된다.’는 것이다. 둥근 꼴이든 네모꼴이든 그릇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물 자체로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조 이연의 반란을 곁에서 도와 창업의 현장을 지켜본 태종 이세민은 백성이 군주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던 사람이다.

무엇이 태종을 위대한 성군으로 만들었을까? 공자가 말한 ‘바느질 하는 법은 동네 아낙네에게 물어보고, 지게 지는 법은 지게꾼에게 물어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담아 주위 사람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삶의 본질에 충실하였던 것이다.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와 같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정치를 하여 태평성대를 이룬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성공 비결이 있다. 스승을 잘 만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모두가 스승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 속에 빠져 살고 있는 까닭에 자신의 분야를 제외하고는 아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어떤 상사와 일하느냐에 따라서 최고 다섯 배 정도의 실적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누구를 만나서 일하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하물며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 하는 것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는 신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본인이 알고 지내는 주위 사람들의 언어, 행동, 신념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의 성공 요소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인적 요소이다.

孟母三遷之敎, 이 말은 인격 형성 과정에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요즈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입학생의 움직임을 보면 과거의 학구에 얽매여 무조건 자녀를 입학시키던 기존의 사고에서 탈피하여 입학시키려고 하는 학교의 프로그램이나 학교(원)장 그리고 교직원이 학생들을 대하는 학교 문화를 직접 경험하거나 또는 실태를 파악하여 학교를 결정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는 자녀를 담임하거나 자녀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인적 자원을 중요시하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강원도 춘천시 서면에는 박사가 100명이나 배출된 박사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1963년에 송병덕씨가 미국에서 처음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앞집, 뒷집, 옆집으로 퍼져 박사마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왕대밭에서 왕대 난다.’는 속담처럼 훌륭한 인물이 배출된 곳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는 말이다. 이는 벤치마킹할 수 있는 인물이 주위에 있어, 그 사람의 언어, 행동, 신념을 흉내 내어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공자의 里仁爲美의 교훈처럼 주위에 인적자원개발의 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단 한 사람의 '랍비'인 토케이어씨는 한가한 시간이면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데, 이제 겨우 다섯 살인 그의 아들 역시 아버지의 흉내를 내면서 '공부하는 척'을 한다고 한다. 아이는 서재에서 가장 두꺼운 책을 꺼낸 다음 의젓하게 앉아 페이지를 넘기면서 눈을 치켜뜨는 아버지의 폼을 흉내 낸다.

물론 아직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내용을 알 리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아버지란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관념이 어린 그의 가슴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그것이 그의 정신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리라는 점이다.

'아무리 공부를 하라고 타일러도 우리 애들은 통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아야'라고 탄식조로 말하는 아버지, 그 탄식은 자녀들이 흉내낼 만한 아버지 상을 가지고 있지 못한 데 원인이 있지 않을까? 교육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부모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지 않고서는 자녀들의 올바른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배우는 것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생활을 하는 부모가 자녀들의 장래 모델이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제가 오늘을 만들었듯 오늘 또한 내일의 바탕이 될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꿈의 직장을 열어 가는데 음미해볼만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어느 마을에 다리를 저는 사람이 있었다. 철이 없던 그의 아내는 남편을 놀리느라 ‘절뚝이’라 불렀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절뚝이 부인’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부부는 짐을 싸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철이 든 아내는 남편을 ‘박사님’이라 불렀다. 그러자 그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박사 부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예화는 학교 문화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존중해야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長毋相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한도에는 추사가 제자 藕船 李尙迪에게 보낸 情表로 그려준 것이다. 권세와 이익만을 쫒던 세태에도 불구하고 李尙迪이 보인 의리와 지조를 지켜준 데에 대한 고마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력으로 합한 자는 권력이 떨어지면 교분이 성글어진다.’고 하였는데 君은 그러지 않으니 태사공의 말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라고 한 것이나 공자께서 ‘날이 차가워져서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 知後凋)’고 했는데, 지금 그대와 나의 관계는 前이라고 더한 것도 아니요. 後라고 줄어든 것도 아니요. 라고 표현한 것처럼 세한도를 후세에 전한 것은 충분한 교육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읽는 것이다.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이고 제자라는 생각으로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서 한 가지씩 배우고 가르치려는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은 과연 어려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