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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부교역자의 지위와 역할 (3)
이광원 기자 | 승인 2023.11.26 21:17
서승룡 목사 
새전주중앙교회 담임목사, (사)한국실천신학회 회장, 전 한신대학교 외래교수

[발제문 전문] 
 
1. 들어가는 말

교회공동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아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모인 곳이다. 구성원마다 각기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긴다. 목사는 목사로, 장로는 장로로, 성도들도 여러 사역으로 섬긴다. 특히 부교역자는 부교역자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교회공동체를 세운다.
 한국교회에서 리더십은 리더인 담임목사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때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이 흔히 성공이라고 말하는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이제는 교회에서 리더십의 변화가 요구된다. "많은 서구의 교회에서는 같은 급의 목사 둘, 혹은 셋이 함께 목회하는 동사목회(同事牧會, team ministry)의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당회장, 설교, 심방 등을 윤번제로 해 가면서 조화 있는 목회"1)를 하고 있다. 이처럼 박근원은 “공동지도력(shared leadership)”2) 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최근에는 교회의 핵심 동력을 담임목사에게만 초점을 맞추

* 새전주중앙교회 담임목사, (사)한국실천신학회 회장, 전 한신대학교 외래교수
1) 박근원, 『오늘의 교역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217
2) 박근원, 『오늘의 목사론』, 31. “지도력을 요청하는 다른 모든 직업이 다 그렇지만 목회는 더욱 혼자서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일할 줄 아는 지도력(Synergistic
leadership)이 요청된다.”


었던 것이 부교역자, 장로, 평신도들에게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담임목사의 리더십에 부응하는 교회 안의 다양한 직분자에게 헬퍼십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부교역자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면 먼저 담임목사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담임목사가 80년대와 90년대의 상황인식을 가지고 목회를 하면서, 부교역자에 대한 인식을 한다면 부교역자와 갈등이 유발된다. 담임목사는 시대적 교회 현실과 부교역자에 대한 현실 인식에 민감해야 한다.
더불어 교회에서 교인들의 부교역자에 대한 인식도 변화되어야 한다. 교인들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차별이 심하다. 담임목사에겐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다가도 부교역자에게는 마치 회사 하급 직원을 대하듯 한다. 이런 이유로 부교역자가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부교역자도 자신을 돌아보아 스스로 변화되어야 한다. 담임목사, 교인, 부교역자가 상호 작용하면서 변화되어야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겠지만 현실은 매우 어렵다. 담임목사의 인식이 변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라때’는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담임목사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는 제도적 장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인들의 변화는 더욱 힘들다. 부교역자에 대한 목회자로서 존중이 필요하다. 여러 상황은 부교역자의 위치가 매우 불안정하고 열악하다. 이런 이유로 상처받고 포기하여 도망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부교역자의 사역을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스스로 갱신하여야 한다. 부교역자는 자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담임목사의 헬퍼로서 담임목사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데 공헌을 해야 한다.
본 글에서는 부교역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목회 현장에서 부교역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데 있다. 부교역자가 자기 자신을 계발해야 하는 부분을 찾아보면서 부교역자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특히 목회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는 것이 바람직한 것을 알아보고 관계성을 계발하는 데 있다. 

2. 부교역자에 대한 이해

2.1. 일반적 이해

 부교역자는 먼저 교역자라는 큰 틀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부교역자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다만 성경에서는 ‘목자(牧者)’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말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지도자를 일컫는다. 교역자는 목회자로 목회를 하는 사람이다. 목회란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3) 즉 목회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이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갖게 하고 믿음 안에서 성숙하여 주의 일을 하는 봉사자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은 크게 보면 다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일군이다. 한 하나님을 모셨으며, 한 성령의 역사를 받으며, 한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는 한 교회의 동역자들이다. 동역자라고 할 때 주의할 것은 그 지위와 역할이 동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치 손이나 발이 한 몸이지만 그 몸을 위한 지체로서의 역할은 다른 것처럼 각 동역자 간에는 교회를 효율적으로 섬기기 위한 지위와 역할이 분화되어 있다.”4)
부교역자라 할 때는 담임목사를 제외하고 교회 안에서 목회 고유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 부교역자는 먼저 목사로 안수받은 사역자이다. 이들이 주로 담당하는 부분은 교구를 맡아 교구 관리를 실질적으로 하는 교구목사, 행정을 담당한 행정목사, 찬양과 예배를 담당한 음악목사, 교육을 담당한 교육목사, 그리고 교인들을 상담하는 상담목사 등이 있다. 
아직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으나 설교권을 위임받은 준목(강도사)이 있으며, 이들은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전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목사 안수를 받는다. 전임전도사들이 있는데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매일 출근하면서 맡겨진 사역을 하는 자들로 심방을 주로 담당하는 전도사, 행정을 담당하는 전도사, 전도를 담당하는 전도사 등 특별한 부서를 맡아서 사역하는 교역자다. 또한 교육기관을 맡은 교육전도사 등을 통칭하여 부교역자라 부른다. 부교역자는 교회 상황에 따라 목회 기능의 어떤 부분을 분배하여 책임을 위임받거나 또는 담임목사의 전반적인 목회를 보좌하게 된다. 

2.2. 헌법적 이해 

부교역자에 대한 각 교단 헌법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대동소이한 것을 볼 수 있다. 부목사직은 신분상 항존직이요 종신직이다. 먼저 부목사에 대한 각 교단의 헌법을 살피고 각 교단의 부목사에 대한 법적 특이한 부분만을 여기에서 언급한다. 한국교회의 부교역자에 대한 위치와 현실을 찾아보기로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헌법 27조 부목사에 대해서는 3항에 “부목사는 위임목사를 보좌하는 임시 목사다. 임기는 1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부목사의 청빙은 당회의 결의와 제직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청빙서는 제직회 출석회원 과반수가 서명날인을 한 명단, 당회록 사본, 제직회 회의록 사본, 목사의 이력서

3) 에베소서 4:12
4) 임수택, 『교육전도사론』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43


를 첨부하여 노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계속 청원은 당회의 결의로 하며 당회 회의록을 노회에 제출한다.”5)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헌법에서 “당회는 지교회에서 시무하는 목사, 부목사, 장로 2인 이상으로 조직하되, 당회 조직은 세례교인(입교인) 30인 이상이 있어야 한다.”6) 당회원에 부목사가 포함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부교역자에 대한 예우라 할 수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와 장정’에서 개체교회 담임자와 부담임자에 대해 구별해놓고 직무를 기록하고 있다. “개체교회 담임자는 구역 인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감독이 파송하며 영적지도자, 행정책임자, 교회 회의의 주재자로 명시돼 있으나 부교역자는 담임목사를 보좌하며 담임목사가 위임하는 사역의 범위 내에서 직무를 수행한다. 담임목사 유고 시에는 담임목사 또는 기획위원회에서 지명하는 부담임자가 담임자의 직무를 대행한다”7) 기독교대한 감리회의 경우는 구역 부담임자로 명칭하고 있는 부목사의 임무는 장로교단의 규정과 비슷하나 장로교와는 달리 임기가 없으며, 구역의 형편에 따라 규정하도록 하였다. 부목사에 대하여 덧붙인다면 “부담임자가 담임자의 직무를 대신”8)할 수도 있다. 이 말은 담임목사 유고시 부목사가 임시당회장이 되어 당회를 주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부목사의 위상을 보여 준다. 장로교의 임시당회장은 대부분 타교회 목사가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부목사는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교역자로 임기는 1년이며, 중임될 수 있고 담임목사 사임시 함께 사임한다.”9)고 명시돼 있다. “담임목사 사임으로 함께 사임한 부목사는 다음 담임목사 취임시까지 해 교회의 당회장이 될 수 없고, 2년 이내에는 해 교회 담임목사가 될 수 없다.”10)고 되어 있다. 부목사의 임기를 한시적으로 매년 제직회를 통하여 재신임을 묻도록 하는 것과 담임목사가 떠난 해 교회에 2년 이내에는 담임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부교역자에 대한 불신(不信)에서 나왔다.
 기독교한국루터교회에서는 “부목사를 일단 임명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임의로 해임할 수 없도록 교단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데 타 교단과 달리 부목사의 임기를 3년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11)

5)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서울:대한예수교장로회 출판사, 1999) 181-182
6) 위 글, 190
7)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와 장정』 (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2001), 83
8) 장로교에서는 일반적으로 타 교회 목사를 임시당회장으로 선임한다. 9)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헌법』 (서울:한국기독교장로회 출판사 2005) 110
10) 위 글, 112
11) 김성국, 「한국교회 부목사의 현주소와 인사시스템 개선방안」 『교회성장』 (2005.11), 57 


미국 장로교회의 헌법에는 부목사를 당회의 회원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지교회의 당회는 담임목사, 또는 협동목사(co-pastors), 부목사들(the associate pastors)과 시무장로들로 구성한다. 담임목사, 협동 목사들, 그리고 부목사들인 당회의 모든 회원들은 투표권이 있다.”12) 미국 장로교 헌법에서 부목사는 한국장로교의 부목사처럼 보조자이거나 담임목사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수직적인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실제로 미국 장로교의 부목사는 부목사라기보다 협력목사(associate pastor)로서 평등한 관계에서 담임목사나 당회가 간섭하지 않으며, ‘계약서’13)에 명시한 대로 일정 사역만 담당하는 그야말로 '말씀과 성례전의 사역자'이며 임기 또한 담임목사처럼 영구직이다.
한국교회는 부교역자에 대한 헌법적인 규정 때문에 “한국교회 대부분이 부목사들은 주인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곳으로 지교회를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14) 목사는 분명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데 부교역자의 역할은 인간을 봉사하게 된다. 그것도 단순 봉사가 아니라 보좌하는 것이다. 부교역자의 임기가 매년 신임을 받아야 하기에 그다음 해는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하는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명목상은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이처럼 담임목사의 동역자인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목회 방향과 목회 철학 안에서 부분 사역을 할 수밖에 없다. 담임목사의 마음에 안 들면 목회적인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인내심을 갖고 담임목사를 보좌해야 하는 위치이다.

2.3. 역사적 이해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공동체에 대한 봉사의 고귀한 목적을 위해 선택되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이 제일 큰 권위를 가지고 있었으며,15) 감독(장로)과 집사가 그들을 도와 모든 일을 이끌어 갔다. 사도들을 제외하고 “감독(장로)과 집사가 있어서 신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예언자나 교사가 있어 예언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였다.”16) 그러나 특별한 직분의 고하가 없었다. 이러한 교권제도는 중세기 전

12) 황성철, 「현행 부목사제도의 문제점과 그 바람직한 해결방안」 『신학지남』 247호 (1996. 여름), 251
재인용(G-10.0102)
13) 로버트 J. 래드클리프, 『성공적인 부교역자』, 82-83에서 ‘직무설명서’라는 것이 있어서 부교역자가
부임하고 그 직무에 관한 것만 일을 하면 된다. 다른 일은 담임목사와 부목사간에 서로 협의 하여 합의하에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4) 허일찬,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무엇이 문제인가」 『월간목회』 (1992. 2), 91
15) 이종성, 『이종성 저작전집 9권 교회론(2)』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124-125에서 “사도들은
예수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아 예수로부터 직접 그 직책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직은 본인에게만 해당 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이 해야 할 임무로 준 것이기 때문에 그 임무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거나 물려줄 수 없는 것이다.”
16) 이종성, 『교회의 직제와 교육』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99


반에 걸쳐 성직자 계급제도의 틀을 만들었으며 로마카톨릭은 성직 내에서도 계급이 고착화되었다. 로마카톨릭은 교황을 최고 지도자로 그 밑에 주교가 있어 주로 미사를 돕고 교인들을 가르치고 양육한다. 이러한 교직 외에 추기경 제도가 있는데 그들은 교황을 선임하고 교황의 고문 역할도 한다. 즉 교황(敎皇)-추기경-주교(bishop)-사제(priest)-부제(deacon)로 이어지는 성직자들의 계급이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 당시 감독 제도를 채택한 교회 즉 카톨릭교회, 그리스정교회, 성공회 등과 여기서 파생된 교파들은 교직의 계급적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개혁가들은 이러한 계급적 직분이 성경에 전혀 맞지 않다고 공격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단순한 직분제를 확립하였다. 개혁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모든 직분 자들에게 ‘직분의 평등’이다. 
이것은 목사직 자체에도 적용이 된다. 이것을 한국교회에 엄격하게 적용을 시키면, 목사 안에 담임목사, 부목사, 협동 목사가 계급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목사라는 명칭은 선교 초기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선교사를 돕는 사람으로 조사(助師)라는 직분이 있었다. 조사는 오늘날 전도사와 같은 직책으로 선교사를 도와 함께 전도에 종사하며 형편에 따라 다른 선교사와 함께 일하기도 하였다. “한국교회의 초기의 조사들은 대부분 장로로 장립하거나 안수받아 목사가 되어 교회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던 것이 사실이다.”17) 여기서 ‘조사(助師)’는 ‘동사목사(同事牧師)’처럼 담임목사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실제 조사와 동사목사는 의미상 차이가 있다. 조사는 단순히 보좌하는 역할이라면, 동사목사는 함께 사역하는 자이다. 또한 동사목사는 목사이며 이는 안수 받은 자라는 점에서 조사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동사목사에 대한 최초의 보고가 나온 것은 독노회 제4회 때이다. 새문안교회 교회설립에 공헌했던 서상륜의 동생인 서경조 목사가 새문안 교회에서 원두우(Underwood, H.G.)목사와 동사목사로 부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18) 1917년 제6회 총회 회의록에 동사목사에 대한 간단한 정의가 나왔다. “동사목사(同事牧師)19) 란 선교사와 같이 일보는 자이며, 위임 동사목사는 위임받고 선교사와 같이 교회일을 맡은 자이며, 임시 동사목사란 위임을 받지 못하고 선교사와 같이 일을 맡은 자이다.”20) 위의 보고 뒷부분에(12항) “부목사라는 명칭 작명은 명년까지 유안할 일”이라는 보고에 의하면 부목사와 동사목사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나 부목사 이전에 동사목사의 기능과 업무 분야는 오늘날의 부목사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부목사제도는 1952년 제37회 총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정치부 보고에 의하면 “경북 노회장 명신홍씨의 헌의한 부목사 제도 실시에 관한 건은 좌기 내용에 의하면 결정 후 각 노회에 수의함이 가하오며(당석에서 유안), 권한은 원 목사를 보좌함, 임기는 임시 목사와 동일함”21)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J. A. Hodge박사는 그의 책 『무엇이 장로회 헌법인가?(What is presbyterian law?)』에서 부목사에 대한 사역의 범위가 매우 축소된 규정을 하고 있다. “부목사는 위임목사를 보조하도록, 위임목사나 혹은 교회의 청원으로 노회의 허락을 얻은 목사이니, 그 목사비를 교회가 드리거나 혹은 담임목사가 담당하며, 당회에 참여할 권과 치리권이 없으며 오직 담임목사의 지시대로만 임한다. 이는 ‘조사’와 방불하다”22) 우리나라의 부목사는 목사로서 안수를 받았음에도 사실상 담임목사가 시키는 일만 하는 조사로서 역할을 하였다.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사역자로서 조사, 동사목사, 부목사, 강도사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전체를 부교역자라 할 수 있다.

2.4. 성경 인물로 본 이해

부교역자라는 말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부교역자와 비슷한 헬퍼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부교역자의 모형은 모세의 헬퍼로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들 수 있다.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던 요압에게서 부교역자의 전형을 찾을 수 있다. 엘리야를 도운 엘리사, 엘리사의 시종이었던 게하시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편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12제자, 바울을 도운 디모데와 디도에서 부교역자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다윗의 군대장관 이었던 요압장군을 살펴보고 부교역자라는 시각으로 정리한다. 담임목사를 다윗왕으로, 부교역자를 그의 군대 장관인 요압으로 대비하여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요압은 최전방에서 싸우는 장수였다.(역대상 11:6-8) 요압은 다윗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였다. 적군과 대치 상태에 있을 때 다윗은 적을 공격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는 사람을 장수로 삼는다고 선언한다. 이때 요압이 앞서 나가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는 장수가 되어 탁월한 군사 전략가로 에돔을 점령하고 수리아 암몬 동맹에 대항한 싸움에서도 승리한다.
 목회 현장은 전쟁터와 같다. 목회를 하는 중에 위기가 오기도 하고 어려움 속에

21) 대한예수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제37회 회의록』, 163
22) J. A. Hodge, 『무엇이 장로교 헌법인가?』 박병진역, (서울: 성광문화사, 1985), 50-51

서 힘들 때도 있다. 담임목사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할 때 교회는 큰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부교역자는 이 위기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여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목회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자가 부교역자이다.
 둘째, 요압은 다윗이 우리아장군을 죽이는 일을 실행하였다.(사무엘하 11:14-17)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게 된다. 부하 장군의 아내와 불륜을 범한 것이다. 이 한 번의 실수로 밧세바가 임신한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아장군을 불러들여 밧세바와 동침할 기회를 주었지만, 우리아장군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병사들을 생각하며 밧세바와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범죄가 탄로 날 위험이 있어 요압에게 우리아장군을 죽이도록 하였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순종하여 우리아장군을 전쟁터에서 죽게 하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 특히 충성하고 있는 부하를 죽이는 일은 크나큰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그 일을 행하였다. 
담임목사가 불법을 지시하면 부교역자는 어떻게 할까? 정말 난처한 일이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지시사항에 대하여 그것이 잘못임을 알려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죄를 범하지 않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도 범죄 하게 한다면 그 일을 하거나 사임해야 한다. 혹이 담임목사의 잘못된 지시사항을 공개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요압은 랍바성 전투 승리의 영광을 다윗에게 돌렸다.(사무엘하 12:26-29) 요압은 전쟁의 영웅이었다. 전쟁의 승리자는 승리의 전리품을 얻는다. 요압이 랍바성 싸움에서 승리를 눈앞에 두어 승리로 이끈 영광과 랍바성에 대한 전리품을 얻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요압은 함락만 시키면 되는 그 순간에 다윗을 불러들여 그 승리의 영광을 다윗이 얻도록 하였다. 전쟁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서 그 영광을 자신이 차지하지 않고 다윗에게 돌린다.
부교역자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자신을 들어내고 인기를 얻으려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 간혹 자신의 이기적 욕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공을 가로채는 경우가 있다. 같은 부교역자나 혹은 교인들의 업적을 마치 자신이 이룬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그리고 담임목사에게 돌릴 수 있어야 한다. 부교역자는 예전 국가 정보기관이 주장하는 것처럼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보이지 않는 헌신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 요압은 압살롬과 다윗을 중재하였다.(사무엘하 14:1-3, 21-23)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자신의 누이가 강간을 당하고 버림받은 것에 대한 복수로 배다른 형 암논을 죽인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 다윗은 진노하였고, 압살롬은 멀리 도망가서 다윗의 진노가 풀리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서 다윗의 마음이 풀어진 것을 확인한 요압은 다윗으로 압살롬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때 요압이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한 여인을 위장시켜 압살롬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 교인과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교인과의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이 갈등을 조장하는 자가 되지 않고 해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같은 부교역자들과 담임목사의 중재자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담임목사의 오해와 서운함 등을 적절하게 조정하여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 어떤이는 자신의 욕심으로 다른 부교역자를 험담하거나 비난하여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파괴시키도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비하하여 자신이 인정받고자 하는 비열한 방법이다.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에게 건의하는 것과 보고하는 것 등에 있어서 지혜로운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옳은 말을 할지라도 담임목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요압은 압살롬만은 살리라는 다윗의 말에 불순종하였다.(사무엘하 18:10-15)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왕이 되려고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다윗은 그를 따르는 신하들과 급히 도망을 가면서도 자신들의 부하에게 압살롬의 생명만은 살려주도록 명령을 내린다. 계속 쫓아오는 압살롬을 대항하는 요압은 압살롬을 죽일 기회를 얻는다. 다른 신하들은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는 다윗의 명령을 생각하고 주저하였으나 요압은 다윗의 말보다 자기의 생각과 신념대로 압살롬을 죽인다.
요압이 압살롬을 죽이는 일은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일이고, 왕에 대한 반란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하거나 혹은 압살롬이 형을 죽였으며 이제는 아버지 다윗왕을 죽이려고 한 것을 용서하지 않고 압살롬을 죽이는 것이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요 다윗을 위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압살롬은 다윗의 후궁들과 공개된 장소에서 강간을 하였다. 예전에 압살롬과 다윗의 중재자였던 시절에 압살롬이 요압의 재산을 훼손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압살롬은 요압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압살롬과의 전쟁은 다윗왕을 지키기 위해서 군사들이 많이 죽었다. 죽은 병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압살롬을 죽였다고도 볼 수 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생각하는 것과 헬퍼 요압이 압살롬을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다윗이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요압은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압살롬을 죽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에서 담임목사의 가정 즉 식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담임목사의 가족과도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담임목사의 가정이 행복해야 교회가 행복하고 부교역자의 사역이 행복하다. 담임목사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작은 일에 편협한 생각과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이때 부교역자는 담임목사가 공동체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여섯째, 요압은 솔로몬을 후임 왕으로 생각하는 다윗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열왕기상 1:5-7) 요압은 다윗의 아들로 살아있으며 나이순으로 첫째인 아도니야를 왕으로 지지한다. 다윗왕이 생각하는 후계자는 솔로몬이었다.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것은 다윗왕의 뜻과는 배치된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간의 관계에서 담임목사의 뜻과 부교역자의 생각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부교역자가 담임목사를 생각한다고 하지만 정작 담임목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부교역자의 생각과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가 원하는 방법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한다. 담임목사의 잘못된 지시사항은 간청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담임목사의 의중을 알고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것도 지혜로운 사역의 방법이다.
일곱째, 요압은 압살롬과 전쟁에서 승리 이후 다윗이 슬퍼하는 것에 대하여 직언하였다.(사무엘하 19:5-7) 요압은 다윗에게 있어서 군대 장관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다. 다윗이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직언을 하였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을 가게 된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계속 추격했고, 다윗의 군대가 다윗을 대신하여 압살롬과 전쟁을 하게 된다. 이때 다윗이 아들 압살롬만은 살려 달라고 하지만 요압은 압살롬을 죽인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압살롬의 죽음에 슬퍼하게 된다. 자신을 위하여 싸워준 신하들의 공을 치하하지 않고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기만 하는 다윗에게 요압은 직언을 한다. 슬픔을 그치고 수고한 병사들을 치하하지 않으면 이제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다윗을 위하여 싸우지 않을 것이고 다윗의 지도력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교역자는 교인들의 정서를 담임목사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밑바닥 정서라 할 수 있는 교인들과 많은 접촉이 있기에 교인들의 생각을 담임목사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러한 업무에 있어서 담임목사의 눈치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여 사실 그대로를 보고해야 한다. 이러한 직언에 두려워하거나 주저해서도 안 된다. 또한 나단선지자와 같이 왕이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여덟째, 다윗이 명령한 인구조사에 대하여 직언하였다.(사무엘하 24:1-4) 다윗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인구조사를 하라고 한다. 인구조사 대상은 싸움에 나갈 만한 장년 남자들을 계수하는 것인데 이것은 군인의 수를 세는 것으로 군사의 수를 통해 군대의 강성함을 나타내고자 한다. 이러한 인구조사는 전쟁의 승리가 군사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이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또한 인구조사는 세금을 많이 거두기 위함이다. 철저한 인구조사를 하게 되면 장년 남자가 부담해야 할 세금을 많이 거두게 된다. 이런 이유로 다윗은 인구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요압은 인구조사에 대한 명령의 부당성을 제기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되는 것임을 다윗에게 말한다. 이러한 요압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요압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스럽게 인구조사를 명령한다. 분명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이었지만 다윗의 명령에 요압은 순종하여 인구조사를 한다. 다윗의 인구조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여 많은 사람이 염병으로 죽게 한다. 
담임목사가 부교역자에게 요구하는 일이 있다. 이때 그 요구하는 바가 불법일 수도 있다. 그때에는 담임목사에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말해야 한다. 그래도 담임목사가 원한다면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부교역자 양심상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할 수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하거나 교회를 사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부교역자의 역할

3.1 부교역자의 사역

교역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이므로 그 기원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교역자직은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선지자에 해당한다. 제사장은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 의식에 종사하는 성직자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해 주는 일을 하는 자였다.”23) 오늘날 교역자가 예배를 주관하여 집례하는 것과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등은 구약시대의 제사장직을 수행하는 거라 할 수 있으며, 교역자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측면에서는 선지자의 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의 교역자의 모형은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많은 무리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율법을 재해석하였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였다. 예수님은 많은 병든 자를 치료하였으며 용서를 선포하였다.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며, 기쁨으로 변화시켰다. 따라서 예수님의 사역을 목회자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23) 임택진, 『목회자가 쓴 목회학』 (서울: 예장총회교육국, 1974), 25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사역 일부분을 책임 맡아 사역을 한다. 담임목사가 교회 전체를 사역한다면 부교역자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정부분의 사역을 감당한다. 대형 교회에서는 부교역자의 역할이 극히 한정적이며 전문적인 역할을 하지만 작은 교회에서는 부교역자가 많은 부분을 감당해야 한다. 부교역자 혼자인 경우는 교회 전반의 사역을 한다. 
따라서 부교역자의 역할은 교회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담임목사가 일반적으로 부교역자에게 책임을 주는 사역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24) 가장 먼저 부교역자를 청빙 하게 될 때 보통 교육 부분을 맡기기 위해서이다. 전임 부교역자를 청빙하기에 부족한 소규모 교회라도 교육전도사를 청빙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육전도사는 신학생 혹은 신학대학원생을 중심으로 청빙 한다. 성인교육, 그리고 청년, 학생회 교육, 어린이 교육 등 교회 내에서 연령대별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교회학교의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부교역자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부서 책임자로 부교역자는 부서에서 말씀을 선포할 뿐 아니라 교사들을 관리 감독하기도 한다. 교사들에게 교육 전반적인 부분을 다루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을 시행한다. 부교역자는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지식만이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 등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로 부교역자의 역할은 행정 분야이다. 보통 부교역자로 부임하게 되면 매 주일 주보를 내는 일을 한다. 담임목사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부교역자가 주보를 하는 것은 일반화되어 있다. 주보를 만드는데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교회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주보가 엉망이 되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주보의 오자나 탈자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잘못된 주보가 나가면 이 일로 인해 실족하는 자들도 생기게 된다. 특히 이름이 들어가야 할 부분에서 더욱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교회에서 필요한 행정 서류 보관할 서류25) 및 자료 등을 잘 보관하도록 해야 한다. 필요한 서류 및 서식 등을 파일로 따로 보관하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회 행사를 기획하거나 실행하는 일을 해야 한다. 심지어는 교회 신문이나 각종 홍보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담임목사의 설교를 정리하여 책을 편집해야 하기도 있다.
셋째로 상담 분야이다. 교인은 신앙 부분뿐만 아니라 가정 문제도 목회자에게 상담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사소한 일을 가지고 담임목사에게 찾아가서 상담하는 것

24) 이주영목사의 책에서는 행정, 교육, 상담, 심방을 말하고 있다. (1987년). 안승철목사는 교육, 상담, 행정, 선교, 기획, 음악 분야를 말하고 있다(2005년). 이것은 부교역자의 역할이 점점 세분화되어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5) 이주영, 『부목사학』, 116 


을 부담스러워하여 부교역자에겐 편안히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부교역자는 상담을 거절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듣는데 열심을 내야 한다. 상담의 기법에서 경청하는 것으로도 상담이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교역자는 상담에 대한 학문과 실제에 대한 교육을 기본적으로 학습한 이후에 부교역자에 임하는 것이 좋다.
넷째로 심방 사역이 있다. 심방은 부교역자가 하는 사역이지만 담임목사의 주 사역이 되기도 한다. 담임목사가 심방 사역을 통해 교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목회에, 설교에 자료로 사용된다. 따라서 부교역자의 심방은 담임목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심방 해야 한다. 특히 담임목사가 알고 싶어 하는 각 가정의 대소사를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심방을 할 때 한 가정에 너무 오래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편으로 형식적인 심방이 되지 않도록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한다. 
다섯째로 찬양 사역이 있다. 오늘날은 찬양을 통한 감성을 움직이는 예배와 집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부교역자는 찬양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더불어 음악적 감각도 배워야 한다. 예배 시작 전에 찬양을 인도하는 사역뿐만 아니라, 찬양단을 조직하거나 운영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성가대를 관리할 뿐 아니라 지휘까지도 하기도 있다.
 기타로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는 사역이다. 홈페이지를 관리 운영할 수 있는 사역이다. 각종 예식에서 담임목사가 집례하지 못하는 경우 담임목사를 대신하여 예식을 집례하는 사역이다. 결혼예식이나 장례식 등을 말한다. 복지 분야를 맡아서 복지사 자격을 가지고 교회가 운영하는 복지 관련 정책을 기획하거나 운영26)하는 사역도 해야 한다.
 설교자로서 특수한 자질을 요청하는 교회의 교역자는 말씀의 연구와 전달을 잘하기 위해서 미디어의 도구를 활용해서 능력을 계발해 갈 수 있다. 가르치는 목회에다 역점을 둘 수밖에 없는 교회에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그 분야의 특기를 갖춘 교역자를 요청하고 있고, 교회 전도에 목회의 우선순위를 둔 교회 상황에서는 전도의 전문가를 교역자로 모시려고 한다. 근간에는 상담을 잘하는 교역자로서의 전문적 요청이 많아지고 있고, 행정을 잘하는 교역자, 기획을 잘하는 교역자 등도 요청되고 있는 현실이다.
 결혼예식이나 장례식 등 담임목사가 집례하지 못하는 경우 담임목사를 대신하여 예식을 집례하는 사역이다. 설교나 각종 기도회 인도 등 담임목사의 사역을 맡아서

26) 교회가 위탁받은 복지관을 운영하거나, 지역 아동센타 혹은 청소년 공부방, 푸드 뱅크 등 각종 복지 사역을 감당하기도 한다

해야 할 일이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부딪치는 문제는 부교역자로서 자기 정체성 문제이다. 목회 현장에 부임했을 때 이 자기 정체성의 갈등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초년기에 오는 강한 스트레스의 요소가 된다. 여기서 교역자로서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면 곧 안정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짧은 기간 안에 교회를 옮기게 된다. 목회에 환멸을 느껴서 다른 직업을 찾기도 한다. 자신이 목회자로 소명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교역자의 역할을 감당하다 보면 자신이 목회자인가 아니면 교회 관리집사인가 하는 정체감의 위기를 맞게 된다. 특히 자신이 하는 일이 불명확하게 될 때 이런 위기는 쉽게 찾아온다. 교역자는 자기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혼돈과 고립상태에 빠지게 된다. 

3.2 부교역자의 헬퍼로서 사명

 부교역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 헬퍼로서 역할과 책임을 생각해 본다. 
첫째,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목회의 파트너(partner)이다. ‘파트너(partner)’라는 말은 목적을 두고 함께 협력하여 사역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동역자로 “‘함께 일하는 자(Fellow-Worker)’ 혹은 ‘도와주는 자(helper)’라는 의미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 부분을 담당하다(play a part)’는 뜻으로 사용”한다.27) 따라서 ‘파트너’란 서로의 필요에 따라 협력하며 함께 일하는 자(co-worker)이다. 파트너십(partnership)은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함께 협력하는 것이다.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게 될 때 서로의 신뢰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신뢰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피차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부분이다. 파트너는 “동등한 관계”28)를 유지해야 한다. 누군가의 힘의 우위가 생겨서 서로의 상하차별이 생기는 경우 “온전한 파트너 관계”29)가 성립될 수 없다. 파트너라는 것은 서로가 평등한 관계에서 함께 일하는 자이다. 파트너는 상호 간에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잘 이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서로의 생각과 추구하는 것, 일하는 방식 등이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름에 대하여 서로가 소통하게 될 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효과적인 파트너십(partnership)은 상대방은 물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게 해주며, 개개인의 재능을 한데 모아 준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술, 아이디어를 하나로 엮어서 독창적인 해결방안을 창출해 내는

27) 이성희, 『디지털 목회와 팀』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88
28) 데이빗 히넌·워렌 베니스, 앞 글, 39 이것을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29) 홍혜실, “섬김리더십” 『숙명리더십연구-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제 1집 창간호』 (서울:숙명여자대학교, 2000), 94


것이다.

둘째,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팔로워(follower)이다. 팔로워(follower)란 홍혜실은 “리더나 조직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수동적인 자가 아니라 리더를 보좌하는 1차적인 자(first assistant)로, 실질 업무를 수행하고 리더와 조직의 성공을 좌우하는 사람”30)이라고 정의한다.
오정현목사는 “팔로워십(followership)을 성경적 리더십”31)이라고 정의하면서 “팔로워십은 리더(leader)를 리더 되게 하는 것으로 팔로워십을 훈련받은 자가 부교역자로 부임하게 되면 교역자간의 팀워크가 잘 이루어져 상승의 효과”32)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부교역자의 팔로워십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이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신앙의 선배나 교역자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야기와 현재 자신이 경험해 나가면서 터득하는 것이 전부였다. 팔로워의 역할은 단순히 따르는 자로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조직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팔로워는 리더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 팔로워라는 의미는 지도자를 도와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능동적으로 감당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셋째, 부교역자는 참모(參謀)이다. ‘참모(參謀)’라는 말은 군대 용어로 인식되어 있지만 다양한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군대에서의 참모는 지휘관의 전문적인 보좌관으로서 지휘관의 책임 분야를 분할 담당한다. 참모의 주요 기능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지휘관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직무에 관한 판단을 통해 지휘관에게 건의하며 계획 및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즉 참모는 부대장을 도와 부대장이 바른 판단을 통해 작전을 수행하도록 한다.
 실제 리더(leader)와 참모는 자신이 맡은 역할만 다를 뿐 대등한 파트너(partner) 이다. 참모는 자리보다는 역할이나 관계를 뜻하는 용어다. 특정인의 곁에 있다고 해서 모두 참모인 것은 아니다. “참모 마인드 없이 보스(boss) 가까이 있으면 측근이나 부하일 뿐이다. 보스가 가고자 하는 길의 동반자, 파트너가 참모다.”33) 좋은 참모는 리더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자료들을 더 많이 준비해서 리더를 충분히 설득하여 의견을 관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좋은 참모는 리더에 대한 신뢰감을 이용하여 권력을 행사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참모는 재상일 수도 있고, 장수일 수도 있고, 부하직원일 수도 있고, 학자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남편 혹은 부인일 수도 있고, 비서일 수도 있으며, ‘부목사’34)일수도 있다.

30) Robert E. Kelley, The Power of Followership (New York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Doubleday, a division of Bantam Doubleday Dell publishing Group, Inc. 1994), 장동현 역, 『폴로어십과 리더십』(서울:고려원,1994), 40
31) 오정현, 『잠들지 않는 사역자』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6), 54
32) 위 글, 54
33) 이철희, 『1인자를 만든 참모들』(서울:위즈덤하우스, 2003), 291



넷째, 부교역자는 코치(coach)이다. “‘코칭(coaching)’은 한 개인이나 그룹을 현재 있는 지점에서 그들이 바라는 더 유능하고 만족스러운 지점까지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기술이자 행위”35)이다. '코칭'은 '지도' 혹은 '충고'와는 개념적으로 다르다. 스포츠에서 보통 등장하고 있는 코치와 선수들 간의 상하 관계의 의미가 아니라 코칭은 “대등한 동반자(同伴者) 관계”36)를 전제로 한다. 코칭은 사람들이 자신의 비전을 키우고, 자신감을 가지며,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또한 스스로 기술을 증진 시키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실제적인 조치를 돕는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경험이나 시각 또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동역자’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코칭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관점의 차이를 인정한다. 사람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좋은 코치는 선천적으로 은사가 있어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유능한 코치가 되기 위한 기술을 배우고 익히면 가능하다. 코칭의 기본은 서로가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부교역자를 파트너, 팔로워, 참모, 멘토, 코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것을 헬퍼십이라는 틀 아래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헬퍼십’이란 새로운 리더십이 아니라 그동안 폭넓게 사용하였던 리더십의 한 분야로 팔로워십, 이인자 리더십, 멘토링, 참모, 코칭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사용되어왔다. 이들을 협력자라 할 수 있고 헬퍼라 할 수 있다. 

3.3. 부교역자의 현실

부교역자는 분명히 목회자이면서도 목회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목회자로서 담임목사의 목회를 실질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운전 등 잡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부교역자가 한국교회에서 가지고 있는 현실적
위치를 ‘기독교신문’에서 특집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37) 첫째, 부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을 제외하고는 목사이면서도 비당회원이다. 교회의 전반적인 운영은 당회에서 이뤄지는데 부목사는 당회에 참석하지 못하

34) 오창학목사는 『월간목회』 (1985. 12), 31에서 부목사를 참모로 표현하였다. 지휘관은 당회장이고 부목사는 참모로서 지휘관인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이나 목회이념들을 잘 포착해서 잘 보좌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고, 또 당회장과 장로님들 사이에서‘완충역할’을 해주고, 교인과 당회장 사이에서 완충역할도 잘해 나가야 한다. 
35) 게리콜린스, 『크리스챤 코칭』 정동섭역 (서울: 한국기독학생회, 2004), 21
36) 정진우, 『21세기 리더십은 코칭이다』 (성남: NCD, 2004), 21
37) 민성식외 3인, 『기독교신문』, 1601-1603호, 2001. 3. 25 ∼ 4. 15


기 때문에 당회에 현실적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못하게 된다. 우선 청년이나 학생, 어린이부는 대부분 부교역자가 담당한다. 그러나 이들 부서를 담당한 부목사가 당회에 들어가지 못함으로 인해, 각 부서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나 요구가 교회 당회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교육부서장을 임명할 때도 실제 담당하고 있는 부교역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부교역자는 계약직으로 비정규직이다. 부교역자는 1년 계약직이며, 1년 계약도 담임목사에 의해서 중도에 퇴직을 권유받거나 반강제적으로 퇴직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는 동역자라는 수평적 관계이기보다는 수직적인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된다. 당연히 부교역자들이 목회의 뜻을 마음껏 표출할 수 없고 사역의 자율성도 그만큼 줄어든다. 부교역자들은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이런 제도적 불안 때문이며, 담임목사나 장로 등 당회원의 눈치만 살핀다는 비판도 이 같은 요인에서 비롯된다. 또한 담임목사가 사임할 때는 자동사임 대상이다. 
 부교역자들이 때로는 교회를 자주 옮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처음 교회를 정할 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산물이다. 부교역자들은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훌륭한 담임목사를 만나길 간절히 바란다. 좋은 모습을 따르고 배워서 더 성숙한 목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현실은 부교역자가 장기 목회하는 것이 어렵다
셋째, 교회에서 부교역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현재 한국교회는 경제위기 이후 어려워진 교회 살림과 다량으로 배출된 목사후보생들로 인해 교회 내에서 부교역자들을 다 수용하기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최근에는전문목회‘라 해서 한 분야에 오랜 목회 경험이 있는 부목사들에게 그 분야를 아예 맡기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일부 대형 교회 부목사들은 아예 눌러앉으려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부목사지만 작은 교회 담임목사보다 사례비나 대우 면에서 낫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생각을 교회 내에서 받아 주는 교회가 있지만, 교회 몇몇 실세 장로들의 눈에 빗나가거나, 목회경력 3년만 지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쫓아내려고 궁리하는 교회도 많다.38)
최근에는 지방에서는 부교역자들의 품귀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신학대학원 지원자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려는 경향이 있어 지방에서는 부교역자 구하기가 힘들다. 물론 부교역자가 한 교회에서 오래 사역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바람직하나 개 교회의 형편에 따라 부교역자가 교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담임목사의 목회에 거침돌이 된다. 

38) 민성식외 3인, 「기독교신문」 1603호 (2001.4.15)

넷째, 부교역자의 사역에 있어서 자율성과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가 상하 관계로 고착된다. 부교역자에게 맡겨진 사역도 담임목사의 조급성 때문에 오래 사역하지 못하고 쉽게 인사이동이 결정되어 버린다. 이 일은 부교역자의 전문성을 살리기에는 한 부서에 최소한 2년이 경과 한 후에 보아야 하는데도 1년 단기의 성과를 요구하는 담임목사의 욕심 때문에 결국은 부교역자의 전문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직무에서도 담임목사의 보조자 혹은 동역자의 역할이 아닌 담임목사의 비서나 설교자료 제공자, 심지어는 교회 관리, 사찰, 운전기사 등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잡무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기 때문에 교역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큰 문제이다.
다섯째, 부교역자가 설교할 기회가 적다. 설교는 교역자의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이다. 설교는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만나는 것이다. 부교역자의 설교는 담임목사가 외부 교회로 출타하거나 안식년을 맞았을 때만 기회가 온다. 담임목사가 아플 때가 설교할 기회이다.
여섯째, 부교역자에게는 일정한 휴식이 없다. 부교역자는 목회 사역이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것이기 때문에 쉬는 날에도 담임목사의 휴식을 위해 대신 수고 하는 경우가 있다. 부교역자에게는 월요일이 휴일이지만 새벽기도회 인도, 교인 장례식, 교회 행사나 교회 탐방으로 오는 손님 접대 등으로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일곱째, 부교역자는 사례비가 부족하다. 부교역자들은 고학력에 장시간 노동, 저임금이면서 동시에 실업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와의 차이는 이른바 목회자 사례비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몇몇 대형 교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많은 교회들의 경우 사례비라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은 교역자 사례비가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회자의 사례비는 지역과 교회마다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구세군의 경우 직위에 상관없이 가족 수에 의해 지급되고 있다. 구세군에는 계급이 있다. 계급이 올라간다고 해서 사례비도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구세군의 경우 사례비는 철저하게 가족 수 등 실제 생활 비용을 계산, 계급에 상관없이 지급된다. 구세군의 사례비의 내역을 살펴보면 대부분 참령보다 부위가 수령 하는 금액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참령보다 부위가 부양하는 가족 등 실제로 생활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구세군의 경우 자녀가 만 20세가 넘으면 가족수당에서 제외된다.  
여덟째, 부교역자는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담임목사의 스트레스가 많이 있음을 모든 교역자는 인정한다. 부교역자에게도 담임목사 못지않은 스트레스가 있다. 사역의 모호함과 언제나 시간에 쫓기듯 하는 사역, 자신의 영적 생활에 대한 둔감에서 오는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 교회에서의 교인들에 대한 무시 등 여러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담임목사로 나가려던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부교역자로 눌러앉은 경우가 있다. 부교역자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절망감과 또 다른 교회를 찾아보면서 오는 불안감, 그리고 사역을 억지로 하는 일로 인해 오는 힘겨움 등이 스트레스가 된다.
또한 부교역자의 스트레스의 많은 부분은 관계에서 온다. 담임목사와의 관계에서 담임목사의 질투와 무관심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담임목사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기에 담임목사의 비인격적인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담임목사와 목회 철학이 맞지 않게 되면 스트레스가 오게 된다. 교인들과의 갈등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교역자의 임기는 당회의 결의로 연장되기에 당회원인 장로들의 눈치를 보는 가운데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장로들이 부교역자를 이용하여 담임목사를 견제하려고 하면 중간에 끼인 부교역자는 정말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부교역자로서 시간에 쫓기다 보면 가정에 소홀하게 되고 이것은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부교역자의 사례 또한 많지 않기에 살림해야 하는 부교역자의 아내와는 재정적인 문제로 인하여 관계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교육전도사는 헌법상으로는 교회의 임시직원에 속한다. 그리고 아직은 신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목사 후보생이다. 헌법에 보면 “목사 후보생은 직무상으로는 노회의 관리 아래 있고 개인적으로는 당회의 관리 아래 있다.”39)고 되어 있다. 교육전도사의 문제점은 오래 사역하지 않는 것이다. 교육전도사는 교회의 필요로 사역을 하지만, 본인의 필요로 사역을 하기에 필요 충족조건이 맞지 않으면 사역지가 자주 바뀌게 된다. 교육전도사는 학생 신분으로 대부분 학업과 병행하기 때문에 충분한 사역의 시간을 낼 수 없다. 어느 교회에서는 새벽예배까지 포함한 모든 예배 참석을 요구받기도 한다. 

4. 부교역자의 자기 계발

부교역자의 대부분은 부교역자로서 특별한 소명감보다는 단독 목회를 하기 위한 수순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적당히 시간만 보내고 빨리 다른 목회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목회한다면 그것은 교회나 본인으로나 바람직하지 않다. 

39) 한국기독교장로회, 앞 책, 122

부교역자 시기야말로 미래를 준비하고 역량을 갖춘 목회자로서 준비하는 기간이다. 무엇보다 이 기간에 자신을 어떻게 단련하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목회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부교역자로 사역하는 기간은 자신의 목회 비전을 세우는 기간이다. 부교역자로서 자신을 위한 비전과 교회를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분명히 하게 될 때 사역을 하면서 힘이 생기고 즐겁게 된다. 비전이 있으면 사역을 하면서 타성에 젖어 수동적으로 하지 않고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사역을 하게 된다.
 특별히 부교역자의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모든 목회 사역을 삯군이 아닌 교회의 주인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부교역자의 경우 자신의 목회 사역의 열매를 담임목사가 거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직접 거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역으로서 열매를 거두기에 함께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
부교역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는 것은 부교역자로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존재 이유를 확실히 아는 일이다. “위치가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능력이 탁월하더라도 조직 속에서 그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바다 속에 있는 진주와 다를 것이 없다.”40) 부교역자들은 배우는 자로서 인내하며 훈련을 받아야 하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 일하면서 담임목사가 일을 잘못 처리할 때 비난하거나,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훗날 담임목사가 되었을 때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거울삼아야 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부교역자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고 목회 현장에 뛰어들어서 좌충우돌하는 순간에 교회와 담임목사, 그리고 동료 교역자 및 교인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게 된다.
한국교회의 부교역자 생활은 만능 플레이어가 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부교역자들은 긴급하고 중요한 일에 늘 쫓기게 되어 있다. 이렇게 쫓기는 삶을 살면 자신의 성장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자기 계발에 소홀하여 매너리즘(mennerism)에 빠지게 된다. 부교역자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프로권투 선수는 체중을 조절하기 위하여 모진 애를 쓰면서 먹는 음식, 잠자는 시간, 심지어 성생활까지도 관리한다. 체중 조절에 실패하게 되면 아예 링 위에 올라가지 못하고 실격패로 끝나기 때문이다.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거나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단독 목회의 성공적인 보장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담임목사로 나가기 전에 목회를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40) 황의영, 『교회직임과 리더십』, (서울:생명의 말씀사, 1993) 292

4.1. 영성 훈련

 영성(Spirituality)이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은혜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하는 역사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 성품 속에 형성시키도록 나를 쳐서 헌신하게 하는 것이다.

 부교역자의 영성 관리는 부교역자로의 목회 사역 가운데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영성은 특정한 분야의 기술을 연마하는 전문가가 되려는 것이나, 어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훈련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교역자의 영성은 어느 한 경지에 올라서서 그대로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기도 하고 퇴보하기 때문이다.

영성 함양을 위해서 첫째는, 소명감에 대한 재확인이 필요하다.41) 부교역자의 소명의식은 영성의 척도가 될 뿐만 아니라 부교역자의 사역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목회자로 소명감이 없이 목회를 시작하게 될 때는 목회의 사역이 고통이며 가정과 교회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목회자로서 소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인되어야 할 사항이다.42) 목회 사역에 있어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시작했을지라도 부교역자로서 소명감을 가지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부교역자의 소명감은 또 다른 차원의 소명감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교회와 담임목사를 위한 섬김의 소명도 함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영성훈련은 말씀 묵상 훈련이다. 모든 교역자는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부교역자는 바빠서 성경 볼 시간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우 바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는 시간이 없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서 자신과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만나야 한다. 성경 말씀을 읽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말씀 안에서 비추어 보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는, 영성훈련의 중요한 것은 기도 훈련이다. 예수님께서도 바쁜 사역 가운데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였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하물며 교역자는 더 많은 기도를 요구받고 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는 것을 쉬는 것이 죄’라고 말할 정도로 기도를 강조하고 있다. 부교역자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교

41) John. C. Dissen, 『중소교회 목회론』 김만풍역, (서울: 아가페출판사, 1980), 29-30에서 소명을 받지 않은 자가 목회에 끼치게 되는 위험을 말하고 있다. 42) 이중표, 『사모여 행복하라』 (서울: 쿰란출판사, 2006), 28에서 찰스 스펄전 목사의 소명에 대하여 정리한다. 첫째, 소명은 자기 일을 귀히 여깁니다. 둘째, 소명은 자기 일을 쉽게 느낍니다. 셋째, 소명은 자기 일을 즐거워합니다. 소명자로 산다는 것, 이는 사는 보람을 느끼며 행복한 존재로 일생을 사는 인생 최고의 복입니다. 

역자로서 바로 서지 못한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여, 하나님께 향하여 우리를 위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기도로 나타난다. 즉 우리가 우리의 관심과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여 집중하면 생활을 변화시킨다.
부교역자는 기도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나의 문제들을 낱낱이 아뢸 뿐만 아니라 부교역자로서 중보기도를 드려야 한다. 부교역자로서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기도는 교역자의 가장 중요한 습관이 되어야 한다.
영성훈련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 목회자의 ‘게으름’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고 바로 세우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지 않는다. 부교역자의 영적 상태는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4.2. 인격 함양

인격이라는 말은 영어 단어 ‘캐릭터’(character)로 우리 삶의 작은 순간마다 형성된다. 인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지루하고 긴 작업이다.
인격(人格)이란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데에 필요한 품성으로 말할 수 있으며, 바른 습관을 몸에 익힌 사람이요, 안정된 성격 형성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인격적인 부교역자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은 그리스도인이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모습이다.
 첫째, 인격적인 부교역자는 매우 상냥하고 친절하다. 부교역자의 입가에는 항상 미소가 있어야 한다. 신앙이 우리를 행복하게 함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인격적인 부교역자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예의가 있다는 것은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경어를 사용해야 한다. 사람들은 곧잘 인사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간성을 판단하기도 한다. 셋째, 인격적인 부교역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성실하다. 그리고 무엇을 할 때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한다. 넷째, 인격적인 부교역자는 진실성이 있다. 하나님 앞에 교인 앞에 담임목사 앞에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할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 인격적인 부교역자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부교역자가 처한 현실이 어둡고 힘들더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감사는 사역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여섯째, 인격적인 부교역자는 성적인 유혹을 이겨낸다. 교역자들은 성적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젊은 부교역자들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접근하는 이성 교인들이 간혹 있다. 부교역자의 성적 타락으로 인해 교회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훌륭한 교역자는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설교를 잘하고, 교회를 성장시킨 사람이 아니라 인격이 되어 있는 사람이다. 

4.3. 전문성 계발

자기가 받은 은사를 좋아하고 그것을 계발하며 일하는 교역자는 전문성을 갖춘 사역자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란 보통 “일정한 교육이나 훈련을 전제로 한 해당 직종의 숙련자들로 자기 자신들의 사리사욕이나 이해관계를 떠나서 그 전문적 본래의 궁극적 목표를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람”43)을 말한다. 서구사회의 전통의 목회자는 의사, 변호사와 더불어 3대 전문직으로서 교회에서도 교역자의 전문성이 요구받고 있다.
첫째, 부교역자는 전문가 의식(professional)을 가져야 한다. 부교역자를 배우는 자라 할 때 아마추어(amateur)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나 부교역자는 일정한 신학을 공부하였고 목회 경험을 통한 전문가이다. 프로의식이란 일을 할 때의 자세, 대화 시에 태도 등에서 프로다운 모습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전문가는 적당주의를 배격한다. 사실 내가 일하는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한 ‘프로의식’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즉 부교역자는 “프로로서 생각하고 프로로서 일해야”44) 하는 전문가이다.
둘째, 부교역자는 자신의 탁월함을 계발해야 한다.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그 은사를 활용하여 사역의 극대화를 이뤄야 한다. 부교역자는 자신의 목회 사역에 필요한 전문적인 신학 지식뿐만 아니라 인접 학문인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도 함께 공부하여 목회 사역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부교역자는 매일 매일의 생활 가운데 규칙적인 연구 시간을 가져야 한다.
셋째, 부교역자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응급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이다. 담임목사 부재 시에 갑작스럽게 생기는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목회자의 중요한 업무이면서 특권은 예식을 집례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식을 집례하면서 예식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이해는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당혹하게 한다. 장례식이 갑작스럽게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침착하게 준비된 진행을 하게 될 때 교인들로부터 신뢰감을 

43) 게이로드 노이스, 박근원역, 『목회 윤리』 (서울:도서출판 진흥, 1992), 253
44) 홍혜실, 앞 글, 93


얻게 된다.
넷째, 부교역자는 성경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다. 부교역자는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여러 신학과 이론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전체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반 성도들은 성경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러므로 평신도에게 성경공부를 진행할 수 있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다. 성경에 대한 지식 없이는 교역자로서 전문가라 할 수 없다. 성경에 대한 감동이 없이 열정적으로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을 김남준은 “코메디(comedy)”45)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며 성경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다섯째, 부교역자는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복음에 대한 확신으로 전도에 대한 훈련을 받고, 자신만의 전도 경험을 정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교역자의 가장 확실한 자리매김은 전도를 잘하는 것이다. 어느 교회는 전도만 전문적으로 하는 부교역자를 청빙하는데 전도의 전문성은 담임목사에 큰 도움이 되는 능력이 된다.
여섯째, 부교역자는 회의를 잘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여러 부서의 회의로 결정되므로 회의를 은혜롭게 생산적으로 진행하는 기술과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부교역자는 문제 해결과 의사 결정에 있어서 회의를 준비하고 문제를 제시하며,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하며, 최종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전문성을 계발한다.
부교역자는 교회의 실질적 리더인 담임목사가 교회를 관리 운영해 나가는 것과 치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나 기술 등을 보고 익혀야 한다.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의 사역을 겸손하게 배우고자 할 때 기능적인 면과 함께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
현대 교회는 점점 다양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교회의 모든 행정 업무나 목회 자료가 전산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예배의 형식도 역동적인 영상예배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부교역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계발하여야 한다. 이제는 신학뿐만 아니라 컴퓨터, 인터넷, 영상 프로젝트, 음향 및 조명 등에 대한 전문성은 앞으로 계속 발전해 나가는 IT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원천이 되며 교회에 부임하여 담임 목회를 할 때 큰 자산이 된다.
또한 상담에 대한 전문성, 찬양에 대한 전문성, 교회학교 교육에 대한 전문성 등 부교역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발견하고 그 은사에 맞는 전문성을 계발해

45) 김남준,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서울:도서출판두란노,1997) 74

야 한다. 부교역자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목회 현장에 뛰어들 때가 있으며 그때서야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란 쉽지 않다. 전문성은 교육이나 훈련으로 어느 정도 습득할 수 있기에 신학대학원의 교육이 이론 교육과 함께 교역자에 폭넓은 목회의 경험과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교육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4.4 시간 관리

오늘의 교역자들에게 부딪히는 ‘시간문제’는 그 심각성으로나 빈도로나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총이다.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그 시간을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교역자들의 시간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대부분 바쁜 교역자들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대부분 시간을 빼앗긴다. 이 경우 무엇이 더 중요하며 무엇이 덜 중요한지에 대한 ‘우선순위’46)를 결정하는 일은 시간 관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시간이란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사람이 시간에 이끌려 가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시간을 도적질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알아 이를 제거해야 한다. 지나치게 일을 지연시키고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은, 시간을 도적맞는 것 같으며 업무의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가장 큰 방해꾼”47)이다. 교역자의 생활 주변을 검토해 보면 귀중한 시간을 쓸데없이 허비하는 경우가 있다. 필요 없는 것에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만일 줄이기 힘들다면 함께할 수 있는 일은 함께하여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근원은 교역자의 우선적 시간 할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48) ① 개인적인 명상과 경건의 시간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② 목사는 교인들의 위기에 민첩하게 반응을 보여야 한다. ③ 설교와 예배를 위한 준비가 되어야 한다. ④ 교회의 사무적이고 행정적인 일을 그때그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⑤ 목사는 개인적으로 독서를 하고 연구를 계속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⑥ 목사의 생활이 제 아무리 바쁘다 해도 가족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⑦ 목회자는 자기의 건강관리를 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46) 이성희, 『밀레니엄 목회리포트』 (서울: 규장문화사, 1999), 188에서 이성희는 목회사역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하는데 중요성(importance)과 긴급성(urgence)이다. 47) 이성희, 앞 글, 201 비고:이성희 『교회 행정학』 (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 1994) 222-227에서 시간을 도적질하는 요소로 ① 지연:업무를 적절한 시간에 수행하지 못하고 미루는 습관은 가장 큰 시간의 도둑이다 ② 비능률:자신의 능력으로 수행할 수 없는 지나친 업무를 위임받아 늘 분주하면서도 하나의 업무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③ 방해:불시에 방문하는 객으로 인하여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④ 위임부족: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겐가 자신의 업무를 적절히 위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⑤ 잡동사니 우편물: 우편물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⑥ 분명한 우선순위 결여: 우선순위가 분명하지 않으면 업무수행의 혼돈이 온다. 48) 박근원, 위 글, 136-137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보면 부교역자가 사역 시간 이외의 시간을 연구 시간으로 할애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생활 가운데 새벽 시간이나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규칙적인 연구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부목사의 목회 사역을 풍성하고 기름지게 해줄 것이다.”49) 부교역자의 시간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부교역자 자신이 계획하였던 시간이 전혀 예상 밖의 상황으로 인해 틀어지기 때문이다. 한밤중에도 나가야 하고 저녁 늦게까지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 등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시간 관리가 필요하다. 

5. 부교역자의 관계 계발

 사람들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러한 관계들이 올바르고 건전하지 못할 때 그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온다. 부교역자의 사역에서도 부적절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그 관계로 인하여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저해하는 것으로 이성희는 ‘책임전가, 이기심, 편협심, 우월감, 열등감, 질투심, 배타심’50)을 말한다. 부교역자는 관계를 깨트리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야 한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 서로가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관계를 형성하려고 개인적인 욕심이 들어가게 되면 바람직한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다. 부교역자의 관계 형성은 대부분 담임목사, 동료 교역자, 교인들,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5.1 담임목사

부교역자와 담임목사와의 관계는 부교역자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와의 갈등의 원인은 인식 차이에서 오는 작은 부분이 확대 재생산되어 큰 혼란을 주기도 한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를 ‘부부 사이,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로 긴밀한 관계 즉 상호 존중과 협력의 관계로 말한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서로 ‘궁합’이 맞아야 한다. 궁합이라는 것은 담임목사의 목회 스타일과 담임목사의 성격 등이 부교역자와 맞아야 한다. 최근엔 MBTI라는 성격 유형별 검사를 통해서 자신의 성격을 분석하고 담임목사의 성격을 비교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상호공존의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사역지가 없어 급하다고 교회를 쉽게 선택하지 말고 담임목사의 성격과 목회 철학 그리고 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것들을 살펴본 후에 자신의 은사, 성격 등을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요즘 한국교회는 ‘팀목회’라는 새로운 목회 형태를 추구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담임목사나 부교역자가 팀목회의 일원이 되어 상호 존중, 상호 전문성 보완으로 교회에서의 아름다운 팀을 만들어 간다. 
그렇다면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웨인 제이콥슨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와의 갈등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접근하도록 하였다. 갈등의 원인을 세대 차이, 신학적 견해 차이, 잘못된 의사소통, 시각의 다양성, 뒤바뀐 우선순위, 환경, 유대감의 결여‘로 정의하면서 교역자간에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선 ’존경, 이해, 자유, 순종, 경의, 정직 그리고 개방성을 주장한다.51) 교역자의 관계가 직업상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고 ‘가족적인 관계’이어야 한다. 림인식목사는 담임목사와의 관계에서 그 역할을 잘못하는 부교역자를 ‘독단형, 통고형, 보고형의 부교역자로 구분하고 바람직한 부교역자를 협조형 부교역자로 표현한다.’ 가장 바람직한 부교역자형은 협조형으로. 이런 부교역자는 언제나 사전에 요청하고 협의하고 허락을 받아서 충실히 일한 다음에 보고한다. 더 좋은 것은 마음으로부터 담임목사를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가 물과 기름처럼 겉돌아서는 결코 안 된다.52) 
헬퍼로서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와의 관계에서 가질 태도는 첫째,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을 파악하고 순응해야 한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사이에는 신학적 배경이나 목회 경험 자라온 환경, 새로운 학문의 접근 등에 따라 목회 철학이 다를 수 있다. 팀목회로 잘 알려진 안산제일교회 고훈목사는 “자신의 목회 철학이 부교역자들에게 바로 전달되지 못하는 어려움”53)을 토로한다.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이 아주 확실하게 나타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을 안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부교역자는 담임목사가 목회하는 것을 유심히 살피면서 목회 철학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주보나 담임목사의 저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담임목사는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들이 있다. 새벽기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

51) W. 제이콥슨, 『교회 내 교역자간의 갈등 교회 내 병적요소를 치료합시다』 (서울:나침반, 1996), 91-111 52) 림인식, 「부목사론」 『목회와신학』 83호(1996.5), 159 53) 고훈, 『교회성장을 위한 팀목회』 (서울:베드로서원, 1996), 128

면, 팀워크를 중시해 개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담임목사도 있다. 또한 업무 능력보다도 예의 바른 태도를 가장 우선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시간에 철저한 담임목사도 있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 같은 비전과 목회 철학이 있어야 한다.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와 자신의 목회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평가하고 불만을 토로해서는 안 된다. 부교역자는 수용력이 있어야 한다. 담임목사가 사역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여 장단점을 파악하여 자기 목회 철학을 다듬어 “새로운 자기 목회 철학을 창조해야 하며 보다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목회 철학을 승화”54)시켜야 한다. 박종구는 부교역자는 담임목사가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을 바로 세우고 변화시키는데 긍정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55)
둘째,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 교인의 가교역할을 한다. 교회가 성장하게 되면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만나기 힘들어 거리감이 생긴다. 담임목사에 대한 불만이 발생하기도 한다. 교인들은 마치 부교역자만을 신임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부교역자와 의논한다는 듯이 담임목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잘못 처신하면 담임목사에게 협력하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불만 있는 교인들에게는 동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를 존경하고 순종하는 교우에게는 더욱 힘쓰게 하며, 타 교회에서 온 교우나, 불만과 오해가 많고 비판적인 교우에게도 지혜롭게 대하여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도록 지도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에 대한 원성이 나올 때 부교역자가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또한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에 대한 대변인 노릇을 해야 한다.
효과적인 담임 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담임 목사와 부교역자간의 의사소통은 교회 전체의 의사소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부교역자들과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확한 기대치의 표현이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교역자의 역할 분담에 대해 구체적인 사역 설명서가 있으면 좋다.
교인들과 접촉하는 기회가 많은 부교역자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정보를 신속하게 담임목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교인들의 상황, 교회 상황, 그리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관한 사항 등 자신이 맡은 부서 외에 교회 전반적인 상황을 보고하며 또한 담임목사가 설교에 유용하게 사용할 정보 등을 폭넓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셋째,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의 신뢰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긴장 관계가 아닌 신뢰 관계를 형성해서 상호 보살핌과 배려가 있어야 하지만 자주 분쟁이나 의심이 생긴다. 이러한 갈등의 중요한 요인은 ‘상호 신뢰’의 부족에

54) 장달윤, 『섬기는 종으로 변화되자:부목사 처신법과 목회상식』 (서울:부림, 2000), 18 55) 박종구, 「한국교회와 부목사에 대한 대담」 『월간목회』 (1985. 12), 40

서 온다.
신뢰가 없으면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담임목사가 놓치고 있으며,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면 부교역자의 사역이 고통이 된다. 신뢰는 획득하는 것이며,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담임목사와의 신뢰는 담임목사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다. 이런 신뢰감은 진실함에서 이루어진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에게 진실해야 한다. 거짓이 없고 속임이 없어야 한다. 부교역자가 만일 잘못한 일을 했을지라도 솔직하게 담임목사에게 말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좋다. 거짓으로 속여 위기를 넘겼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진실이 밝혀지면 담임목사와 신뢰 관계는 회복할 수 없게 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신뢰를 쌓았다가도 한순간에 신뢰가 무너진다.
넷째, 부교역자는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교회 내에서 실제적인 책임이 없다. 부교역자의 실수와 부도덕한 일까지도 담임목사가 책임을 진다. 부교역자는 엄격한 의미에서 자기 목회가 없다. 부교역자는 아무리 잘해도 영광은 담임목사에게 돌아가고 무능력한 부교역자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담임목사가 받는다. 부교역자의 책임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한 단편적 책임이라면, 최종적으로 모든 책임이 담임목사에게 있는 것이다.
부교역자는 충실한 ‘주의 종’으로서 책임감 있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에 비해 어떤 일에 대한 책임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핑계 삼아 부교역자 생활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적당히 시간만 보내기도 한다. 교회에서 대우받은 만큼만 충성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한다. 교역자는 자신에게 어떤 대우를 해주든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충성’해야 한다. 충성은 담임목사만 아니라 부교역자에게도 필수적인 덕목이다. 충성은 작은 것에서 시작되며 매일 반복되는 것을 잘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자기의 책임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자기의 위치를 바로 알아야 한다. 각 교단의 헌법에서 부교역자가 해당 교회의 담임목사로 바로 되는 데는 일정한 제약이 존재한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자각하고 담임목사의 사역에 충성해야 한다. 부교역자의 책임감에는 사역 기간도 포함되어 있다. 2년 미만의 사역은 사실상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부교역자는 사역하는 교회에서 그 역할에 맞지 않거나 도움이 안 된다고 느끼면 적응력을 계발하든지 아니면 하루빨리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오래 있으면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는 자가 아니라 목회에 방해자가 된다. 
다섯째, 부교역자는 담임목사를 존경해야 한다. 담임목사에 대한 존경은 순종에서 나온다. 담임목사의 지시사항에 순종해야 한다. 부교역자 생활이 ‘순종의 훈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담임목사에 대한 존경심은 담임목사에 대한 예의에서 찾을 수 있다. 담임목사와 많은 시간에 걸쳐 같이 행동하고, 식사하고, 교제하다 보면 담임목사가 어려운 상대에서 쉬운 상대로, 먼 상대에서 가까운 상대로 느끼게 된다. 이때가 실수하는 시점이다. 가까워지고 편하게 느껴지면 그때부터 말이나 행동이 도를 넘는 언어와 행동을 하게 된다.
담임목사에 대한 존경은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보통 부교역자는 예배의 상황을 준비하기 때문에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예배를 참여해도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많은 사역으로 피곤하여 설교 시간에 조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것들이 습관적으로 계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담임목사의 설교에 집중하고 담임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을 수 있을 때 부교역자의 사역이 기쁨이 되고 즐겁게 된다. 특히 담임목사의 설교를 비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담임목사에 대한 존경은 험담하지 않고 칭찬하는 것에 있다. 담임목사와 함께 생활하다 보면 담임목사의 장점이 보이기도 하며, 단점도 보이게 된다. 특별히 담임목사의 단점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다른 교역자나 교인들에게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담임목사 본인이 인식하고 있는 약점에 대해 부교역자의 지적은 담임목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담임목사를 존경하고 따를  수 없다면 다른 임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존경하고 따를 수 없는 담임목사라고 판단된다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여섯째,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 사역적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부교역자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존재 이유, 직책상의 위치, 직능상의 위치를 이해함과 동시에 역할 분담에 따른 책임을 효율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담임목사의 생각과 의중을 잘 파악하여 그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특별히 담임목사에게 보고를 할 때도 원칙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른 보고 요령은 결론을 먼저 말하고 그 결론에 이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 후에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56)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생각을 구분하여 전달해야 한다. 주어지는 부서와 책임에 대하여 자세히 보고하며 정기적인 만남을 통하여 일의 진행 과정을 계속 보고하고 어려운 문제는 즉시 보고하고 담임목

56) 박종신, 『담임목사가 부교역자들이 알고 있길 원하는 것들』 (청주:도서출판기드온, 2002), 162에서 보고를 잘하는 6가지 요령은 ① 결론-이유-상황설명의 순으로 하라 ② 5W2H(When, Where, What, Who, Why, How, How Much)를 확실히 정리해 보고한다. ③ 나쁜 일부터 보고한다. ④ 필요한 자료를 첨부하여 보고한다. ⑤ 객관적인 사실과 자신의 주관을 명확히 구분하여 전달한다. ⑥ 담임목사가 질문할 것을 미리 예측하여 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한다.

사의 도움과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담임목사에게 교회에 전반적인 일에 대하여 제안하는 것도 지혜로워야 한다.57) 교회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에게 적극적으로 제안을 해야 한다. 제안한 내용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제안할 때의 시기와 장소 등도 고려하는 것이 좋다. 또한 담임목사 요구사항을 메모하고 되도록 신속히 실행해야 한다. 교역자 회의 때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심방 중에 그 가정에서 내놓는 기도 제목도 세심하게 적어 둘 필요가 있다. 
부교역자는 주어지는 책임의 범위에서만 단독으로 일을 추진해야지 모든 일을 부교역자 독단으로 진행하다 보면 담임목사와 갈등을 겪게 되고, 동료 교역자들과 관계가 깨어진다.
우리는 흔히 ‘입장을 바꾸어 생각 해봐’라는 말을 사용한다. 부교역자가 어떤 현실을 볼 때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담임목사의 입장으로 보게 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김민정은 입장의 차이를 숲과 나무로 비유하면서 통전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 전체를 보는 눈과 눈앞의 부서만 보는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담임목사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58)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의 관계가 이성적으로 비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의 성적인 농담을 해서는 안 되며, 신체적 접촉 등에 있어서 분명한 거부의 의사를 표현해야 하며, 거리를 유지하여야 한다. 특히 담임목사와의 부적절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모든 면에서 주의해야 한다. 

5.2 부교역자

 담임목사와의 관계가 수직적인 관계라 한다면, 부교역자간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한 교회에서 교역을 함께하는 동역자는 마치 한 부모 아래 혈육을 나누는 형제와 같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은사에 따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있기에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서 동역을 이루어야 한다. 잠시 있다가 떠날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선임 부목사를 찾고, 선후배를 따지고, 목사 안수나 나이로 서열을 찾으려고 함으로 갈등을 유발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교역자가 자신의 사역을 위해 부교역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

57) 박종신 위 글, 168-169 ① 사전에 담임목사에게 기획안을 올릴 것을 말씀드린다. ② 제안은 담임목사가 시간의 여유가 있고 기분이 좋을 때를 선택한다. ③ 담임목사를 설득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자료를 많이 수집하여 제시한다. ④ 겸손한 자세로 말해야 한다. 미리 담임목사가 할 만한 질문이나 변론을 예상하여 그에 대한 답변이나 대응방법을 생각해 두는 것도 좋다. ⑤ 담임목사가 내 제안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지적하면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 준다. 당황하거나 불쾌한 얼굴을 하지 말고 지적사항을 수용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⑥ 나의 기획이나 제안을 담임목사가 받아들이지 않을지라도 절대 반감을 갖지 않는다. 58) 김민정, 『교회를 세우는 부교역자 리더십』 (서울:생명의 말씀사, 2012), 64-77

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또는 어떠한 일을 결정하기 어려울 때 등등의 목회 사역에서의 위기 상황은 언제나 닥쳐올 수 있기에 부교역자와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간다면 서로 도와줄 수 있게 된다. 부교역자가 여러 명 있는 교회에서는 부교역자간의 사역이 명확해야 한다. 불분명하게 되면 목회자들은 자신이 맡은 부서 이외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며, 교회 전체 프로그램은 망각한 채 각자 자신의 맡은 부서만을 생각하고 챙기는 ‘부서 이기주의’가 생겨난다. 
첫째, 부교역자는 동역자들로부터 서로 배워야 한다. 동역자의 설교를 경청해야 한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 준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동역자와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좋은 모습을 보이면 서로 간의 관계 형성에 매우 좋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설교를 평가하거나 의문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동역자끼리 서로 배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59) 부교역자들은 다양한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 은사들을 전문가인 동역자로부터 배우는데 열심을 내야 한다. 
둘째, 부교역자는 지나친 욕심으로 교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변화를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임지에서 행정, 교육 등의 체제나 프로그램 등에 문제가 있을 때 비교적 작은 부분으로부터 서서히 고쳐 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교역자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무 빠르게 변화를 시도하거나 교회의 조직구조나 프로그램에 지나치게 비판적이어서는 안 된다. 부교역자는 자신이 담당한 부서를 잘 이끌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런데 부임하자마자 담당한 사역에 뭔가 새로운 활력을 주려는 지나친 욕심을 내는 경우가 있다. 전임교역자가 담당한 부분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셋째, 부교역자는 임지를 옮기면 전임지의 활동과 교인에 대하여 잊어야 한다. “부교역자가 새로운 사역지로 떠난 때에는 전임지에 대하여 깨끗이 손을 떼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신 왕래나 전화 왕래를 삼가는 것이 좋다”60) 교인들이 그동안 정들었던 부교역자와의 관계를 지속하여 신임 부교역자의 사역에 비협조적인 경우가 생기게 된다.
넷째, 부교역자 간에는 서로 비교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부교역자들 끼리끼리 모임이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 부교역자간의 당파적 모임은 교역자 전체의 화합을 깨트리게 되며 교회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에게 어떤 목회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반대로

59) 박종신, 앞 글, 205-206
60) 이주영, 『현대목회학』 (서울: 성광문화사, 1985), 125


다른 동역자와 비교하여 열등감에 빠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달란트를 주시되 각기 다른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은 각자 받은 능력이 다르다. 그것을 인정하고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부교역자에 대한 선입관을 갖지 않고, 단점을 보려고 하지 말며 장점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61) 나아가 동역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다섯째, 부교역자는 같은 교역자와의 인간관계를 잘해야 한다. 한번 잘못된 인간관계를 다시 본래 상태로 회복시키려면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므로, 처음부터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같은 교역자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는 것과 연결된다. “담임목사나 여러 사람 앞에서 다른 교역자를 모욕하거나 부끄럽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교역자와 함께 심방을 할 때 선배 교역자인 경우에는 먼저 나서지 않는다. 교역자 회의나 담임목사 앞에서 다른 교역자의 의견을 강하게 반대하거나 과오를 추궁하지 않는다”62)
부교역자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들어가 담임목사와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부교역자들은 서로에게 칭찬의 말을 많이 하도록 한다. 칭찬을 듣고 화내는 이는 없다. 동역자와의 만남에서 담임목사의 험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같은 동역자라고 편히 생각하여 담임목사를 비난하게 되면 그 말은 고스란히 담임목사에게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동역자로서 철저히 예의를 지켜야 한다. 선배는 선배로서 후배를 대할 때, 후배는 선배를 대할 때 정중하게 대하여야 한다. 이러한 예의는 인사를 할 때 겸손하게 인사해야 한다. 후배라고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사적인 만남에서도 조심해야 하며 공적인 자리에서는 같은 동역자로서 서로를 높여 주어야 한다. 
여섯째, 부교역자는 자기가 맡은 부분에 대해 책임감 있게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자기가 맡은 부분이 미흡하게 되면 나머지 일은 동료 교역자가 해야 한다. 그것은 동료 교역자에게 있어서 자신의 업무 외에 또 다른 일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요, 이것은 동료 교역자에게 스트레스로 연결된다. 인간관계와 경쟁의식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교인 간의 파당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의 실수를 담임목사의 추궁이 두려워 다른 동료 교역자에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다만 자기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좋은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동료 교역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61) 박종신, 앞 글, 192-194
62) 박종신, 위 글, 196


일곱째, 부교역자는 교회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항상 교회의 규칙에 따라 일하도록 노력하고 자기중심의 독단적인 행동을 삼가는 것이 중요하다. 부교역자는 교회를 섬기기 위해 부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다른 동료 교역자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정중하게 요청한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면 협조체제가 무너져 업무 능률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여덟째, 부교역자는 동료 교역자가 곤경에 빠졌을 때 서로 돕는다. 부교역자들이 사역을 하면서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만나기도 한다. 이때 할 수만 있으면 힘껏 도와주는 것이 좋다. 도움을 받은 동료 교역자는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이때의 도움이 부교역자간의 신뢰를 쌓는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서로 간에 도움을 주고받는데도 “능숙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하여 솔직하고 유연한 자세를 길러야 한다.”63)
다른 동역자의 업무를 이해하고 협력해야 한다. 일례로 교구를 맡은 교역자가 있는데 교구에서 일어난 일을 우연히 알았을 때, 담임목사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담당 교구 교역자에게 전하여 줄 때 동역자와의 관계가 좋아진다. 
동역자간의 수평적 차원에서의 윤리를 살펴보았는데 사실상 거의 상식 수준이지만 이러한 상식적인 차원의 것들도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항상 조심스럽게 동역자와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5.3 교인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보다 교인들과 직접 만나는 일이 많이 있다. 교인들과의 만남을 지혜롭게 해야 한다. 교인들과의 만남이 독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부교역자는 교인들로부터 늘 섬김을 받아 왔기 때문에 권위를 앞세우며 복종을 강요하지 말고, 겸손한 가운데 섬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한 부교역자라 해서 교인들의 요구에 무조건으로 수용해서는 안 되며, 교회와 담임목사에게 유익이 되도록 인도해야 한다.
 첫째, 부교역자는 교인들과의 만남에서 언제나 목회자라는 신분을 가지고 만나야 한다. 부교역자와 교인들과의 만남이 친해지다 보면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부교역자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지라도 교인과의 만남을 목회자로서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교인을 만날 때 목회자로서 신앙생활과 삶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교인들 앞에 당당하기 위해서 부교역자는 자신을 절제하여 흠

63) 스티븐 스토웰·최치영·매트 스타르세비치, 『윈윈파트너십』 (서울: 21세기북스, 2002), 10

잡을 데 없는 교역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간혹 부교역자를 신분이 높은 위치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가지게 된다. 이때 성도들은 상처를 받는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교인들을 겸손히 섬기게 될 때, 교인들로부터 목회자로 존경을 받게 된다.
특히 교인들과 관계에서 진실해야 한다. 인위적 거짓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게 되고 부교역자의 모든 모습이 가식으로 보이게 된다. 진실은 지금 목회자의 권위가 내려가는 것 같지만 그것은 후에 큰 이익이 된다.
둘째, 부교역자는 자신이 맡은 부분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교인들 앞에서 실력이 없는 부교역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인들은 부교역자에게서 신앙의 많은 부분을 도움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부교역자는 성경에 정통해야 한다. 성경을 자주 읽어서 교인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부교역자는 성경에 능통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이 맡은 기관의 기획이나 행정에 대해서도 능통해야 한다. 자기가 담당한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요즘 교인들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부교역자보다 더 많은 노하우(knowhow)를 가지고 있는 평신도도 있다. 그런데 부교역자가 그 분야에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하려는 열정마저 없으면 교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게 된다.
셋째.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 성도들과의 가교가 되어야 한다. 담임목사는 교인들과 일일이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담임목사는 교인들의 이야기를 속속히 알고 싶어 한다. 이 일을 부교역자가 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먼저 담임목사의 목회방침에 대하여 충분히 인식한 후에 담임목사의 목회방침을 교인들에게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담임목사의 목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을 최대한 설득하여 이해시키도록 해야 한다. 종종 불만을 품은 자와 함께 하다 보면 그들에게 동화되어 함께 불평하는 부교역자가 있다. 교인들과 이야기에서 말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 한마디로 인하여 교회에 큰 혼란이 오게 된다
교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어라. 교인들은 담임목사에게 말을 잘하지 못하고 편한 부교역자에게 상담을 한다. 물론 많은 경우는 자연스럽게 담임목사에게 그 말이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도 있다. 
넷째, 부교역자는 교인들과 파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교인들을 대할 때 편애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만 사랑하고 다른 교인들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교인들을 선별하여 만나고, 그 교인들 가운데 자기 사람이라고 하는 ‘부교역자 파당’을 만드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교인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교인들의 마음과 눈이 담 - 87 - 임목사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교인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라는 말을 들은 사울왕이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처럼 교인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 정작 부교역자에게는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부교역자에게 교인들로부터 유혹이 온다. 특별히 담임목사를 싫어하는 교인일수록 부교역자에게 더욱 친밀하게 접근한다. 이러한 접근에 마치 자신을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고 자신이 인기가 있다고 교만해서도 안 된다.
부교역자와 관계가 좋지 못한 교인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부교역자는 그 교인을 미워하여 다른 교역자에게나 교인들에게 불편함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교인에 대한 비방은 절대 금물이다. 그 교인에게 비방의 내용이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섯째, 부교역자는 교인 중 이성과의 관계를 조심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교사로, 찬양대, 청년회 등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젊은 이성과 잦은 만남은 이성으로 애정 공세를 받기도 한다. 따라서 이성 교인과의 문제는 분명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상담에 있어서 둘만의 공간을 가급적 만들지 말고 개인적으로 상담을 자주 해서도 안 된다. 한편으로 부교역자가 이성으로 끌리는 교인이 있을 수 있다. 이때는 그 교인과의 만남을 의식적으로 피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부교역자의 이성 문제가 생기면 교역자의 권위가 떨어지며 이것은 담임목사에게 그 피해가 간다.
여섯째, 부교역자는 인내하여야 한다. 교인들과 함께 사역하게 될 때는 교인들과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역의 인식 차이에서 갈등이 온다. 부교역자는 전문가로서 이론적으로, 신학적으로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교역자의 권위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어 실행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교인은 그 분야의 오랜 경험에서 쌓은 노하우를 가지고 주장할 수 있다. 이 시각의 차이는 교역자로서 보는 시각과 교인들이 보는 시각이 차이가 난다. 교회를 생각하고 담임목사를 생각하며 전체적인 숲을 보는 것이 부교역자라면, 교인들은 보통 자신의 문제 즉 나무만 보게 된다. 한편으로 교인들이 부교역자를 무시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참고 기다리면서, 교인들을 존중하는 가운데 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일곱째, 부교역자는 교인들과 금전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 부교역자로 생활하다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가정에서 돈이 급히 필요할 때가 생기는 경우이다. 넉넉지 못한 부교역자의 사례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다른 동역자나 담임목사와 상의하여 풀어야지 교인들을 만나 돈을 빌리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 된다.
부교역자는 교인들의 생활 정도, 그리고 신앙의 유형 등을 바르게 판단하여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각 교회의 지역적인 상황과 사회적 상황에 따른 교인들의 신앙의 유형이 다르기에 신학교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 판단을 하여 그대로 실천해 나간다면 많은 문제점을 도출하게 될 것이다.

5.4 가족

 가정은 사회의 기초 공동체이다. 따라서 건전한 가정 없이는 건전한 교회를 기대할 수 없다. 지체가 병들면 몸이 건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목회를 잘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왜곡된 말을 이젠 버려야 한다. 오히려 건강한 가정을 가진 교역자라야 그의 목회 사역도 건강해진다. 건강한 가정은 교역자로 무거운 짐 하나를 덜 지고 목회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 건강한 가정을 위해서 먼저 교역자 자신이 가족에 대한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교역자의 가족도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도 경제적인 필요와 육체적인 기본적인 필요의 충족이 요구된다. 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요구되는 정서적인 만남과 대화가 필요하다.
목회자 부부의 “결혼생활에서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아내는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계속 증가하는데 남편은 거기에 참가하거나 듣는 경향이 계속 감소하는 것이다.”64) 아내와 대화를 할 때는 교인들에 관한 내용보다는 가정에 관한 이야기 즉 목회자 자신의 이야기, 아내에 관한 이야기,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 등 가족 중심의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 또한 대화에 있어서 서로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 이때는 목회자라는 것을 내려놓고 남편과 아내로서 대화, 아버지와 자녀로 대화를 해야 한다.
성도들 앞에서 부부간의 인격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 앞에서 아내나 남편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교인들은 교역자의 가정을 통해 자신들의 가정을 돌아본다. 부교역자의 가정은 담임목사의 가정보다 노출이 많이 되기 때문에 부교역자의 가정을 유심히 보기도 한다. 부부간의 성생활에 대한 만족이 있어야 한다. 피곤을 핑계로, 거룩함을 핑계로 성생활이 만족하지 않을 때 성적 타락의 유혹을 받게 된다.
교인들에게 교역자 가정의 중요성을 주지시켜야 한다. 교역자의 가정이 평안해야 사역도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교인들에게 이해하도록 각인시켜야 한다. “목회자 자신과 목회 사역을 위해 건강한 결혼, 건강한 가정을 건축하고 유지하는 일이 중요

64) 김남준,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64

하다는 사실을 교인들에게 알려야 한다.”65) 교역자의 가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여파는 교회 전체로 퍼지게 된다. 교역자의 자녀들에 대한 교인들의 민감함은 교역자에 대한 큰 부담이 된다. 그러나 교역자 자녀라는 틀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교역자 자녀도 똑같은 아이들이다. 다만 교역자 자녀들을 자신의 자식으로 보지 않고 목회할 양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의 내 아이라고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고, 또한 모든 일에 뒤에 쳐져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일반 교인의 자녀들처럼 대해야 한다.

6. 나가는 말

 한국교회에 있어서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 동등한 파트너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교회는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와의 수직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있기까지는 시일이 오래 걸릴 것이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무작정 담임목사의 결단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부교역자 스스로 차선책’을 정리하였다.

부교역자는 목회자로 소명과 부교역자로의 소명이 필요하다. 부교역자의 현실에 많은 문제가 있고 이것을 풀어 가기 위해선 다양한 변화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부교역자는 자기 계발에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성장이 멈추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부교역자에 관한 문제는 먼저 법적인 규정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부교역자의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만을 보좌하는 교역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영구적 목사로 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노회 소속임에도 담임목사와 당회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목사를 청빙 할 때 당회의 결정보다 공동의회를 통하여 투표로 결정하는 것도 그들의 인권과 지위를 보장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재신임제를 없애고 특별하지 않으면 계속 사역할 수 있도록 하든지 아니면 3년으로 기간을 늘리는 것도 바람직하다. 기장 헌법에는 전도목사가 3년 한 번씩 형식적으로라도 재신임을 묻게 되었다. 3년이나 혹은 시무 기간으로 정하는 것도 괜찮다. 부교역자에 대한 처우도 법적으로 최저생계비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교회가 형편

65) London H. B., Neil B. Wiseman, They Call Me Pastor (Ventura:Regal Books,2000) 배응준 역, 『목사』 (서울:규장, 2002), 207

이 어렵다고 부교역자에 대한 처우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 부교역자의 사역이 힘이 든다.
이 어렵다고 부교역자에 대한 처우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 부교역자의 사역이 힘이 든다. 부교역자의 명칭을 동사목사로 개정하여야 한다. 물론 이름 자체만 변경되면 의미가 없다 할지라도 이름부터 변경하면서 부교역자의 위치를 잡아야 한다. 부교역자라는 말보다 함께 일하는 동사목사로 담임목사나 교인들에게도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담임목사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목회자의 교육에서 계속 강조해서 부교역자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담임목사는 부교역자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담임목사는 부교역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담임목사들에게 ‘라떼’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 현실을 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인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담임목사와 당회원이 부교역자를 존중하게 되면 그들도 변화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 본다.
부교역자는 ‘계륵’같은 존재가 아니라 교회에서 꼭 필요한 사역자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부교역자의 목회 사역이 행복해야 한다. 부교역자도 하나님의 사랑받은 사명자이다.
 
[발제문 요약] 
 
“목회 현장에서 부교역자의 역할과 계발”
 
 
서승룡 목사
 새전주중앙교회 담임목사, (사)한국실천신학회 회장, 전 한신대학교 외래교수
 
한국교회에서 리더십은 리더인 담임목사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때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이 흔히 성공이라고 말하는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이제는 교회에서 리더십의 변화가 요구된다. "많은 서구의 교회에서는 같은 급의 목사 둘, 혹은 셋이 함께 목회하는 동사목회(同事牧會, team ministry)의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당회장, 설교, 심방 등을 윤번제로 해 가면서 조화 있는 목회"1)를 하고 있다. 이처럼 박근원은 “공동지도력(shared leadership)”2) 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최근에는 교회의 핵심 동력을 담임목사에게만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 부교역자, 장로, 평신도들에게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담임목사의 리더십에 부응하는 교회 안의 다양한 직분 자에게 헬퍼십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부교역자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면 먼저 담임목사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담임목사가 80년대와 90년대의 상황인식을 가지고 목회를 하면서, 부교역자에 대한 인식을 한다면 부교역자와 갈등이 유발된다. 담임목사는 시대적 교회 현실과 부교역자에 대한 현실 인식에 민감해야 한다.
 
 더불어 교회에서 교인들의 부교역자에 대한 인식도 변화되어야 한다. 교인들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차별이 심하다. 담임목사에겐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다가도 부교역자에게는 마치 회사 하급 직원을 대하듯 한다. 이런 이유로 부교역자가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지금의 교회 상황은 부교역자의 위치가 매우 불안정하고 열악하다. 이런 이유로 상처받고 포기하여 도망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부교역자의 사역을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스스로 갱신하여야 한다. 부교역자는 자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담임목사의 헬퍼로서 담임목사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데 공헌을 해야 한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부교역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목회 현장에서 부교역자가 할 수 있는 ‘부교역자 스스로 차선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부교역자가 자기 자신을 계발해야 하는 부분을 찾아보면서 부교역자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특히 목회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즉 담임목사, 같은 동역자, 교인, 가족과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를 찾아보고 관관계성을 계발하는데 한다.
 
 그리고 부교역자에 대한 현실에서 법적 제안을 한다. 부교역자에 관한 문제는 먼저 법적인 규정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부교역자에 대한 호칭, 임기, 사역, 처우에 관한 법적 보장이 되어야 한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 부교역자가 ‘계륵’같은 존재가 아니라 교회에서 꼭 필요한 사역자로 주신 소명을 감당해야 한다. 부교역자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여 목회 사역이 행복해야 한다. 부교역자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명자이기 때문이다

이광원 기자  newsa@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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