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는 17일 국정원이 자신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한 데 대해 “국민의 비판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시도”라고 비난했다.

박 변호사는 이날 오전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배소송을 제기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이 반박하고 있는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이 ‘아름다운가게’와 관련된 대학, 은행, 바자회 행사를 찾아오거나 전화해 왜 아름다운 가게를 지원하는지 등을 묻고 다녔고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기업에도 월급, 활동내역 등을 물었다고 한다”며 “국정원의 사찰은 제 주변을 상대로 수없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안전보장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시민의 일상적 활동을 조사하는 행위는 국정원법에 어긋난다”며 “국정원이야말로 국민 세금으로 불법 사찰을 벌여 국가 명예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일해 온 사람으로서 이런 사실을 알고도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배경을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이 소송은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부인하는 것으로 국민의 입을 막으려는 정부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권력은 짧고 진실은 길다”고 일침을 놓았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백승헌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민사소송의 방식을 택했다”며 “이는 단지 국가가 개인으로부터 2억원을 환수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경고를 해 국민의 비판 기능을 꺾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추상적인 실체로서 인격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주장할 수 없다”며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백 변호사는 “국정원의 사찰이 이뤄지고 있는 사실은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만큼 박 변호사 의혹을 제기한 것은 대한민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며 “국정원이 감히 국가의 이름을 내세워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분노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수법학자인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도 국정원의 소송 제기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질타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교수는 전날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특정한 공직자도 아니고 정부 자체가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명예훼손 소송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명예훼손은 기본적으로 자연인, 물론 법인도 포함되지만 민간에 적용되는 것이고 자기의 명예를 소송이 아니고서는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라며 “과연 정부가 스스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소송을 제기할만한 주체가 아니다,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다”면서 법원이 소를 각하할 가능성을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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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경 기자  webmaster@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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