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왕따는 내 탓

거울 속에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로 시작되는 『거울의 법칙』은 가슴 찡하게 하는 감동을 담아 노구치 요시노리가 쓴 소설이다.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하나의 ‘결과’이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당사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잘잘못을 가려내고 반성하여 그 원인을 치유함으로써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악연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올해 마흔 한 살인 주부 아키야마 에이코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유타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어떤 놀이에도 끼워주지 않는다. 그래서 좋아하는 야구 경기도 할 수 없다. 다행인 것은 아직 폭력까지는 당하지 않은 듯한 점이다. 가슴앓이를 하는 에이코는 ‘친구와 잘 지내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지만 “듣기 싫어요! 나 좀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라는 반응을 보일 뿐이다.

심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기업이나 개인의 문제를 속 시원히 풀어주는 재주가 있는 경영 컨설턴트인 남편의 고교 선배 야구치에게 전화 상담을 하였다. 유타가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내용을 이야기하고는 해결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러면 방법을 찾아봅시다. 먼저 확실한 것은 부인이 누군가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는 처방전이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부인의 소중한 아드님이 다른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고, 그 일로 부인이 고민하게 된 까닭은 부인이 누군가 감사해야 할 사람에게 감사하지 않고 그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는 확인처방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인의 인생에 나타난 현실은 부인의 마음을 내비치는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거울 속에 나타난 것을 바로잡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에이코는 남편이 트럭 운전을 하였기 때문에 먹고 살 수 있었지만, 학력이 낮은 남편에 대해 ‘사려 깊지 못한 사람’이라든가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무시하고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정아버지에게도 성장하면서 서운하게 느낀 것들을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게 되었고 마음을 닫아버렸던 것이다. 사실 아버지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다 준 덕분에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었고 이만큼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공원에 데려가서 같이 놀던 일, 아버지에게 마음속으로 계속 반발해온 점 등 사과하고 감사하여야 할 일을 생각해냈다.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지레 딸이 나에게 전화할 일이 없을 것이라면서 “에이코한테서 전화 왔어.”하고는 어머니를 바꿔줬다. “엄마, 아빠 곁에 계셔?” “아빠에게 할 말 있어서 전화한 거야?” “응, 조금”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구나.”하면서 아버지를 바꿔주었다. 아들의 문제에서 1퍼센트라도 해방될 가능성이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 벗어나고 싶은 심정에서 전화를 하게 되었다.

“저기, 저,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이제 말해 두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전화했어요. 아버지께서 일하시느라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 덕에 이만큼 자랄 수 있었어요. 제가 어릴 적에 공원에 데려가 놀아주셨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마음속으로 무척이나 반발하고 있었거든요. 그것도 사과하고 싶어요.” 일단 해야 할 말은 전했다. 아버지로부터 들려오는 한 말씀을 듣고 끊으려 했으나 “에니코! 너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한 거니? 도대체 얼마나 심한 말을 했기에 지금 쓰러져 울고 계시잖니?”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오열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의 흐느낌 소리에 에이코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나를 훨씬 더 사랑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나는 거부해왔어. 아버지는 분명 쓸쓸했을 거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딸에게 사랑을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버지도 그만큼 괴로웠던 것이다. 직장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지금 쓰러져 울고 있다. 어머니가 다시 연결해준 전화에서 “에이코야, 미안하구나. 난 좋은 아빠가 아니었어. 네가 싫어하는 일만 했었지.” 다시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죄송해요. 저야말로 나쁜 딸이었어요. 죄송해요. 그리고 저를 길러주셔서 감사해요. 흑, 흑, 흑….” 에니코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살아가면서 닥치는 모든 문제는 뭔가 중요한 일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발생한다는 ‘필연의 법칙’을 깨달았다. 유타로 인하여 아버지에게 고맙고 감사함을 알게 되었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편, 내 인생의 동반자로 항상 곁에 있어주는 남편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유타 앞에서 남편을 무시하던 태도를 뉘우치며 “미안하구나, 아빠는 정말 멋있지. 세상에 참 많은 도움이 된단다. 아빠의 일에 감사해야지.” 에이코가 이렇게 말하자 유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아까 공원에서 돌아오는데 오오키가 공원으로 왔거든요. 그런데 나한테 ‘항상 널 못살게 굴어서 미안해.’하고 말하는 거 있죠!” 에이코는 드디어 기적을 체험하였다. “아드님도 아버지도 부인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부인의 모습을 유타가 거울처럼 연기해 준 거예요 덕분에 부인은 깨달을 수 있었죠.” 컨설턴트 야구치의 부연 설명이다. 거울에 손을 뻗어 그 속의 머리를 빗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기에 머리에 손을 대어 머리카락을 매만지듯이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자기 마음속의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이중래 기자  gwangjule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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