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신문역사 초기의 기자들은, 따라서 침묵하거나, 저항하거나, 아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단재 신채호 같은 이는 남의 나라로 망명해 ‘강도 일본’타도를 외치다 붙잡혀 감옥에서 죽었다.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이나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를 만들기도 했던 이광수, 이른바 신문학의 기수 최남선 같은 이들은 결국 변절해서 일제에 빌붙어 먹고 살면서 그들이 끌어가는 세상이 옳다고 소리쳤다. 나머지는 입을 다물었다.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등장한 것은 1919년 3·1운동으로, 무력적 탄압 일변도의 억압정책으로는 식민통치가 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한 일제가 통치방식을 바꾼 이후의 일이다. 말하자면, 그냥두면 압력이 점점 올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대폭발을 일으킬 게 뻔한 상황에서 불만이라는 압축가스를 살살 빼내어 폭발을 미연에 막는 안전장치로서의 바람구멍 같은 게, 훗날 그런 신문 발행자들이 ‘민족지’였다고 우기게 되는 신문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그런 신문들에도 물론 민족을 생각하는 뜻있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 때문에 그들 신문이 민족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닥치는대로 죽이고 빼앗고 겁탈하고 불태우는 왜군을 말린 일본군인이 몇몇 있었다고 해서 임진왜란을 인도적 평화지원군이었다고 주장하는 거나 다름없다. 식민지배 확장을 위해 도로를 닦고 공장과 다리를 지었다는 이유로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에 근대화 선물을 안겨준 자비행위였다고 떠드는 ‘뉴라이트’들의 뒤틀린 논리가 그에 근접한다.
그들 신문은 논밭과 임야를 일제와 그들 앞잡이들 손에 수탈당해 나라 안팎 사방으로 야반도주하듯 비참하게 흩어지고, 폭탄투척과 목숨을 맞바꾼 윤봉길 이봉창 같은 열혈동포들이 나라를 구하겠다며 나라를 버리고 떠나가던 시절에 상하이 임시정부나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 중국 화북일대 항일무장세력을 도적이니 비적이니 무뢰배니 하며 진실을 은폐하는데 앞장섰다. 훗날 그들 신문은 그런 시절에 혈서로써 일본 관동군 입대 허가를 애소하고 만주국과 일본육사를 거쳐 항일독립세력 ‘토벌’과 식민통치 유지·확장이 주임무였던 관동군 장교로 복무한 뒤 광복 이후 이 나라의 권력자로 등장하게 되는 일군의 배절자들을 민족을 구한 사표로 선전하게 된다. 그들은 세상을 거꾸로 서서 봤다.
그들 신문은 자신들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조선민족의 아둔함과 후진성을 왜곡 날조한 일제의 선전선동에 동조했고, 모든 잘못을 당시 피억압민족들의 희망이었던 볼셰비즘(사회·공산주의= ‘빨갱이’)의 과오와 잔인무도 탓이라 우기며 거기에 가담한 민족주의세력을 야만으로 매도한 일제의 농간을 제대로 문제삼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들은 일제 패망으로 광복이 됐을 때 일제에 순종하거나 부역한 덕에 지주 상공인으로 출세한 세력이 결성한 한민당 등 ‘민족’을 앞세운 우파 정치세력의 입이 되고 그들의 경호대가 됐다. 일제가 자신들의 침략 죄악과 조선 민족주의세력의 저항을 좌익 볼셰비즘(공산주의) 위협론으로 감추고 호도했듯이, 광복 뒤의 친일세력들 역시 반공주의라는 ‘빨갱이 신화’로 자신들의 지난 죄를 모조리 감추었다. 나라가 침략자의 손에서 벗어난 뒤 당연히 핵심 담론으로 등장했던 친일세력 척결문제가 자신들의 숨통을 조여오자 그들은 불과 얼마전까지도 같은 연합세력이었던 소련과의 대결정책(냉전)으로 돌아선 미국이 앞세웠던 이승만 등 친미세력의 반공주의에 편승해, 담론 자체를 ‘친일이냐 아니냐’에서 ‘반공이냐 아니냐’‘빨갱이냐 아니냐’로 바꿔치기 해버렸다.
그 반공주의 그늘에 자신들의 친일죄악을 숨기고 살아남아 다시 바뀐 시대의 대세를 장악하기 위해 그들은 멀쩡한 사람들, 주로 친일세력 척결을 주장했던 양심적 민족세력을 빨갱이로 몰아갔다. 한국전쟁 직전 시작된 ‘보도연맹’ 단속과 무참한 양민학살이 그렇게 해서 일어났다. 한 동네 사람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줄로 묶어세워 무자비하게 총살한 ‘빨갱이 소동’은, 말하자면 일제 부역자 친일세력이 자신들의 죄를 표백하고 모든 죄를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던 빨갱이세력에 전가하는 일종의 알리바이 조작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리를 알고 있거나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란 이름표를 붙이고 폭력적으로 제거함으로써 후환을 없애는 제노사이드를 감행했다. 해방 뒤 제대로 된 세상 오기를 갈구하던 사람들이 왜 산으로 들어가 이른바 ‘빨치산’이 됐을까. 한 동네 친근한 이웃이요 형제들이었던 그들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그들을 사회주의 이념의 덧없는 포로요 희생자들이라 간단히 매도해버릴 수 있을까.
친일 부역세력이 정치와 경제와 군대와 경찰을 장악한 이 나라의 주류 언론매체들은 사실 날조와 왜곡을 일삼으며 그런 범죄행위를 옳은 일이라 비호하고 찬양하는 데 앞장섰다. 그 주류 언론의 자기계급 감싸기야말로 친일세력이 살아남고 권력과 부를 차지한 사연을 들려줄 비밀의 열쇠 가운데 하나다.
마침내 4·19혁명으로 한민당과 이승만 친미연합 정치세력이 무너진 뒤 비로소 그런 언론 전통에 동조하지 않는 <민족일보> 같은 혁신매체가 등장했으나 무참한 비극으로 끝났다. 5·16 쿠데타로 다시 정권을 장악한 친일세력들은 <민족일보>를 폐간하고 그 사주를 모호한 죄목으로 몰아 처형했다. 바로 그 전에 한때 민족해방의 수단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가 광복 뒤 탈공산당 선언을 하고 제헌의회 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지냈고 제2대, 3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서기까지 했던 죽산 조봉암을 역시 빨갱이로 몰아 처형했다. 이유는 그가 중심이 된 정치적 반대세력이 그대로 둘 경우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 이유뿐이었다. 권력은 처형 사실의 보도조차 금했고, 신문들은 고분고분 따랐다.
1970년대 초반, 군사정권의 유신독재체제가 이어받은 그런 유구한 전통에 항거한 일군의 기자들이 있었다. 언론자유선언을 통해 사실보도를 천명한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은 결국 그 때문에 무더기로 쫓겨났다. 동아만 1백 수십명, 조선도 수십명의 기자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 이른바 ‘해직기자’가 됐다. 당시 박정희 유신정권은 동아일보가 정권의 보도지침(이건 보도하고 저건 보도해선 안 되며, 이건 이렇게 크게 보도하고 저건 작게 보도해라, 제목은 이렇게 달아라 등등을 신문사 간부들에게 일일이 지시했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신문사에는 당시 중앙정보부원들이 상주했다. 나중에 그 지시내용들을 용감한 어느 기자가 몰래 빼냈고, 당시 지하언론이던 잡지 <말>에서 1986년 <보도지침>이란 책자로 펴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책 발행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붙잡혀 징역살이를 했다.)에 따르지 않자 동아일보에 광고를 주던 기업들을 협박해 광고를 중단시켜버렸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한동안 광고난에 광고도 없이 그냥 허연 지면을 그대로 내보냈다. 유명한 ‘백지광고 사태’라는 것이다.
한국의 신문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그런 광고에서 얻는다. 잠시 버티던 동아일보는 결국 정권의 폭압에 저항하던 자유언론 실천 기자들을 무더기로 내쫓음으로써 광고를 되찾았다. 유신독재체제가 노리던 바였다. 그렇게 해서 죽은 것은 동아일보 저항기자들이 아니라 동아일보다. 동아일보 사주(경영주)는 수많은 기자들의 직업적 죽음을 딛고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역사적으로 죽은 것은 쫓겨난 기자들이 아니라 동아일보요 그 사주였다.
그렇게 해서 쫓겨나 투쟁위원회(동아투위, 조선투위)를 결성한 해직기자들 가운데 일부가 1980년대 초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만들고 지하 저항잡지 <말>을 만들었다. 그들은 1987년 ‘6월항쟁’을 거쳐 국민 모금으로 1988년 5월 창간한 일간지 <한겨레>를 만드는데도 주역이 됐다.
한겨레가 등장하자 동아 조선 등 기존언론들은 한겨레 기자의 기자실 출입도 금하는 등 한동안 무시와 견제, 압박으로 일관했다. 1997년 외환위기사태(이른바 ‘IMF사태’)를 거치면서 건국 이후 처음으로 야당에게 정권이 넘어가자 주류 언론들은 또다시 태도와 전략을 바꾼다.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주류 언론들은 한겨레를 친정부 신문, 친여당 신문으로 몰면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출발부터 힘있는 주류 지배세력에 찰싹 붙어 그들을 맹목적으로 대변해온 친권력 신문들이, 어느날부터 갑자기 전투적 야당지, 반권력 정론지 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레나 동아일보가 변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변한 것이다.
애초에 전체주의권력 비판을 출발점으로 삼은 한겨레는 군사독제체제에 저항한 야당 쪽에 설 수밖에 없었고 또 그렇게 했다. 어느날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갔다고 해서 기존 지배세력이 장악해온 권력 및 사회비판 논조를 바꿀 이유는 없었다. 비록 정권교체 뒤 권력감시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등 이른바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겨레 논조가 근본적으로 바뀐 적은 없다. 표변한 것은 저들이었다. 권력 감시나 비판이 아니라 권력밀착, 권력옹호로 일관해온 탄생 때부터의 태생적 한계를 한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주류신문들은 자신들이 옹호한, 자신들과 한 배를 탔던 주류 지배세력이 야당으로 전락하자 하루아침에 ‘야당지’를 표방하며 ‘언론의 정도’를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색이 바뀐 것이 아니라 바뀐 외부상황에 맞게 본색을 새로 치장했을 뿐이다.
1987년 항쟁으로 절차적 민주화가 달성되고 그 전까지의 철권통치 아래 억압당했던 힘들이 요란한 해방의 구호들과 함께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민주화 억압세력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면서 그들과 한패가 됐던 보수 주류 언론들이 바뀐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여론, 담론의 전복이 필요했다. 그들은 ‘민주냐 반민주냐’는 당시의 주류담론을 ‘영남이냐 호남이냐’의 지역주의 담론으로 바꿔치기 했다. 영호남 지역주의를 담보로 잡은 양김씨(김영삼 김대중)의 파당정치(여기에 김종필까지 넣은 ‘3김’씨 담론이 유행했다)가 나라를 죽이고 있다고 그들은 소리치며 신문지면을 도배하고 이간질했다.
하지만 죽어가던 것은 나라가 아니라 민주화를 거부하며 기득권적 특권에 안주하던, 민주주의를 망가뜨렸고 민주화 때문에 위기에 몰린 그들 자신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없던(아니면 미미했던) 지역주의가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지경으로 만개한 것(만들어진 것)은 그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덕택이었다. 위기국면을 맞았지만 여전히 언론시장을 압도적을 지배하고 있던 보수 주류언론의 계산대로 민주화세력은 지역으로 갈라서고 갈갈이 찢어졌으며 전선은 민주냐 반민주냐가 아니라 영남이냐 호남이냐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그렇게 해서 일제 침략 이래 유구하게 이어져온 그들의 아성은 다시 철옹성이 됐다.
2007년 10년의 절치부심 끝에 권력을 탈환한 세력이 다시는 권력을 잃어버리지 않게 보장해줄 비책으로 개발한 것은 이념·색깔공세와 성장논리. 반미친북좌파! 스스로를 친미반북우파로 자리매김하는 이 황당무계는 자신들이 바로 전까지 그토록 비난했던 친여당지, 친정부 신문이 될 수밖에 없게 된 역설적 상황을 호도하기 위해 주류 신문들이 다시 불러낸 과거의 악령이다. 민주정부 10년간 ‘비판적 정론’을 앞세우며 사실상 맹목적 정부비난·비판으로 일관했던 그들은 자신들이 역시 맹목적으로 옹호했던, 자신들과 한 배를 탄 정치세력이 정권을 탈환하자 이제까지의 정부비난 논조를 하루아침에 찬양하고 지지하는 논조로 바꿨다. 그 이유없는 표변을 그럴듯하게 윤색하는 장치가 바로 반미친북좌파라는 낡은 이데올로기 복원이었다. 우리가 다시 친여당지, 친정부지가 된 것은 위험하고 패륜적인 반미친북좌파들을 비판하고 견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제 언론의 중요한 것은 권력비판이 아니라 반미친북좌파냐 친미반북우파냐다!
권력의 주체가 내편이냐 네편이냐에 따라 친여, 반여가 되는 신문은 올바른 신문이 아니다. 신문은 어떤 권력이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영국 역사가 액턴의 유명한 경구도 있지 않은가.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분명 큰 공헌을 했지만, 신자유주의의 과도한 도입으로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민주화의 열매를 서민들이 아니라 약삭빠른 가진 자들이 독차지하게 만든 과오를 저질렀다.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민주정부 10년의 경제난 비판을 앞세워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정권은 지난 정부들의 그런 과오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기는커녕 그 과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로 미국 일본에서 실패로 판정난 신자유주의의 더욱 과감한 도입이다. 4대강 개발로 대표되는 과도한 토건사업과 종부세의 사실상 폐지가 상징하는 부자 감세, 각종 서민 및 장애자 등 약자 지원정책들의 철회로 나타난 사회안전망 파괴, 환율정책과 대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에서 드러나는 수출지향 대기업 위주 산업정책, 인천공항 등 공기업과 의료 민영화 시도 등에서 보는 도를 넘은 규제완화 민영화, 점수와 학벌을 향한 무한경쟁을 부추기며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계급 확대재생산을 방치하고 있는 교육현실이 그것을 웅변한다. 일본 자민당이 고이즈미 정권시절 과감하게 도입했다가 실패로 끝나 일본경제와 사회를 위기로 몰아간 게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결국 그 때문에 자민당 55년체제가 무너지고 처음으로 야당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명박 정권은 1970년대부터 시작돼 조지 부시 정권 때 절정에 달한 미국 일본 신자유주의 정책을 한발 뒤늦은 지금에야 성공모델로 삼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과연 우리의 미래 희망이 거기에 있을까.
대한민국의 최근 이런 흐름을 비판하기는커녕 거기에 적극 동조하고 그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면서 권력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단순한 지지를 넘어 그 정책 입안자요 전파자 노릇을 하고 있는 존재가 대한민국 주류 보수언론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생각이다. 주류 언론 종사자들 중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다. 나를 포함한 비주류 언론 쪽에도 어찌 문제가 없겠는가.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은 시대 전환기마다 카멜레온처럼 표변하면서 민족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들만의 이익지키기에 집착해온 그런 주류 언론과 싸우며 산다는 얘기와 상통한다. 대한민국 기자의 주요 소명이 바로 기자들과 싸우는 것이라는 기막힌 역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틀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류의 고민들을 붙들어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부산의 어느 고등학교 교지에서 발취)
이형섭 기자 070@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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