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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된장 입맛 가진 프랑스 요리 전문가박효남 밀레니엄힐튼호텔 총주방장
이형섭 기자 | 승인 2010.03.05 00:24
 
프랑스 음식 전문가인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다름 아닌 이곳 대한민국. 어려서부터 줄곧 한국에서 먹고 자라온 터라 나의 된장 입맛은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 있다.

나의 이 된장 입맛은 프랑스 요리를 할 때에도 자주 활용된다. 사실 나는 우리의 토속적인 간장과 장의 맛을 겸비한 소스를 이용해 외국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세계인과 소통하는 것을 나의 가장 큰 임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던 중 나는 얼마 전 사소하지만 놀라운 광경을 하나 목격하게 됐다. 회외 차 해외로 출장을 나갈 일이 있어 외국 항공사의 비행기에 오르게 됐는데, 식사 시간이 되자 기내에서 다름 아닌 우리의 ‘김치’가 기내식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외국 항공사에서 서빙되고 있는 김치라니!” 이것이야말로 ‘음식이 곧 국력’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 있으면서도 유독 음식 문화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건 결코 우리 음식 수준이 선진국의 음식보다 뒤떨어지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나는 그 원인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음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우리 음식에 대해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그런 나머지 우리 음식에 대해 지나치게 쉽게 접근하려는 태도가 이에 대한 소중함을 오히려 잃게 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사실 음식은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선진국에선 음식도 자신들의 생활수준에 맞게 대하고, 그만큼 정성을 다해 만들고, 먹고, 즐긴다. 자기 나라의 음식을 그만큼 소중히 여기고, 다룰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는 우리 음식도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 음식에 담긴 정과 어머니의 손맛은 웰빙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선사한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녹색성장’ 바람과 가장 궁합이 맞는 음식 또한 바로 한국음식이다.

정성과 손맛 더하기 ‘연출’ 감각도 중요

그런 의미에서 마침 올해 초 열렸던 다보스 포럼 ‘한국의 밤’ 행사는 ‘한식’에 담긴 맛과 멋, 그리고 이야기를 세계인에게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영부인과 함께 행사의 만찬을 진두지휘한 내가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나는 현장에서 평소 생각해두었던 한국의 정(情)과 높아진 국력을 콘셉트로 한 상차림을 선보였다. 한식세계화추진단 명예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김윤옥 여사는 그 과정에서 12가지에 이르는 전채 요리와 6가지 메인요리, 4가지 후식 등 22개 요리 전부를 일일이 ‘감수’해주며, ‘우리네 어머니의 정성’을 오롯이 음식에 녹여넣어 주셨다.

특히 메인 요리 중 ‘닭강정(닭고기에 양념을 해서 튀김가루로 튀긴 후 강정소스와 바비큐 소스로 버무린 것)’은 김 여사의 아이디어가 녹아든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프랑스 음식 전문가인 내가 ‘엉뚱하게도’ 왜 한식 만찬이라는 중책을 맡을 수 있었는 지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프랑스 음식을 30년 간 만들어온 내가 서양 사람들의 음식문화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만찬에는 나 외에도 많은 한식 주방장들이 참여했는데, 나는 일종의 총연출가를 맡은 셈이었다. 한식의 메뉴를 구상하고,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식에도 연출이 필요하다. 만들어진 음식을 서양음식처럼 예쁘고 깔끔한 느낌을 줄 수 있게 프레젠테이션하는 것 또한 한식을 어필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음식은 국력’인데, 휼륭한 맛을 지닌 우리 음식이 자꾸 평가절하 되는 건 그만큼 외국에 표출되고, 어필할 만한 그 무언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행사기간 중 요리사이자 연출가를 자처한 것이다.

한식의 ‘매운 맛’ 즐기는 외국인들

이렇게 완성된 한식의 정성과 손맛,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맛깔스런 디자인은 다보스포럼에 참가한 글로벌 리더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진도 특산물 전복을 볶아 백김치로 복주머니처럼 싼 ‘전복보쌈김치’와 시금치, 백년초, 흑임자 등을 이용해 전병을 만들어 쇠고기와 야채를 이용해 감싼 ‘오색밀쌈’ 등 전채요리는 모양과 맛 모두에서 외국 귀빈의 탄성을 자아냈다.

특히 놀랐던 것은 외국인들도 이제 한식에 대해 많이 알고, 또 한식을 제대로 맛볼 줄 안다는 것이었다. 일례로 대표 한식인 ‘비빔밥’을 준비할 때 우리는 서양인의 입맛을 고려해 ‘매운 맛’과 ‘맵지 않은 맛’ 두 개를 모두 준비했다. 외국인들은 매운 걸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선입견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외국 손님 10명 중 8명은 우리가 평소 먹는 그대로 고추장을 넣어 비비는 매운 비빔밥을 선택했다. 한식의 매운맛이 외국에서 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이와는 다른 얘기지만 나는 이미 ‘싱가포르 세계요리 대회’에서 간장을 이용한 소스로 상을 받은 적도 있다. 한식과 한국의 맛에 대한 선입견은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만찬 음식 중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김치치즈크로켓’이다. 산채비빔밥이 우리 음식을 우리 식대로 내놓은 거라면, 김치치즈크로켓은 외국인 눈높이로 우리 음식을 변형해 제시한 것. 이것 역시 외국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나는 프랑스 음식 요리사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한국 식재료와 메뉴의 우수성을 누구보다 확신한다. 이번 다보스 만찬은 그 우수성과 함께 음식을 통해 한국의 높아진 국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나는 세계적인 항공사인 ‘루프트한자 스타 세프(Lufthansa Star Chef)’에 선정되었다. 우리의 음식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됐다는 증거이다. 하늘까지 점령(?)한 우리의 한식, 그 한식이 전 세계로 전파될 날도 머지 않았다.

이형섭 기자  070@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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