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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령 산봉우리, 나그네 눈물로 젖어 있네 - 강진군정약용의 남도 유뱃길
이형섭 기자 | 승인 2010.03.26 21:40
삼남대로는 조선시대에 한양과 팔도를 잇는 9대 교통로 가운데 하나였다. 충청도와 전라도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온 삼남대로는 남해 바다를 건너 제주도까지 이어졌다.

한양에서 제주도까지 가려면 숭례문을 출발해 과천, 천안, 공주, 삼례, 정읍, 노령, 장성, 나주, 영암, 강진, 해남 등을 두루 거친 후에 해남 이진포(지금의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의 조천포로 건너가야 했다.

강진 땅을 향해 기약 없는 유뱃길에 오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노정(路程)도 바로 이 삼남대로를 따라 이어졌다.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긴 학자이자 조선 후기의 개혁사상가인 다산은 천주교를 탄압한 신유박해(1801년)에 연루돼 경상도의 장기현(지금의 포항시 남구 장기면)으로 유배됐다.

신유박해 당시에 목숨을 잃은 사람만도 2백여 명에 이르렀다. 다산의 매형인 이승훈과 셋째형 정약종, 이승훈의 외숙부인 이가환 등도 참형을 당했고 다산과 둘째형 약전은 유배형을 받아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다산은 조카사위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강진으로 다시 유배지가 옮겨졌다.

한양을 출발해 함께 삼남대로를 지나온 정약전, 약용 형제는 나주의 반남정 주막거리에서 헤어져 각자의 유배지로 향했다.

멀리 흑산도로 떠나는 형 약전과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낸 다산은 동짓달 삭풍 속에서 월출산 누릿재를 넘어 강진 땅에 들어섰다. 18년 동안의 기나긴 유배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누릿재를 넘을 때의 소회를 그는 ‘탐진촌요(耽津村謠)’라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누리령의 산봉우리 바위가 우뚝우뚝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
월남리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말게
봉우리 봉우리마다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 같아

다산이 강진 땅에 처음 도착했을 때 주민들은 ‘대역죄’를 짓고 귀양 온 선비를 몹시 경계했다고 한다. 그런 다산에게 호의와 인정을 베푼 사람은 동문 밖의 주막집 노파와 그의 외동딸이었다.

노파에게서 작은 방 한 칸을 얻은 다산은 ‘생각, 용모, 언어, 행동을 마땅히 바르게 해야 할 방’이라는 뜻에서 당호(堂號)를 사의재(四宜齋)라 짓고 꼬박 4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다산은 사의재에 머무는 동안 백련사의 학승(學僧)인 혜장(1772~1811)과 깊이 교분을 나누는 한편, 아들 학연을 불러와 직접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1805년 겨울부터는 강진읍내 뒷산의 보은산방에 머물며 주역을 연구했다. 이듬해 가을부터는 탐진강 하구의 목리마을에 있는 제자 이학래의 집에서 기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도암면 귤동마을에 위치한, 해남 윤씨의 산정(山亭)이었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귀양을 온 지 8년째 되던 1808년 봄의 일이었다.

해남 윤씨 가문의 수많은 서적들은 다산이 유배지에서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학문을 완성시킨 밑거름이 됐다.

총길이가 61.5킬로미터에 이르는 ‘정약용의 남도 유뱃길’은 크게 4개 코스로 나뉜다.

전 코스를 섭렵하면, 사색과 명상에 잠기는 오솔길·갯길, 솔향기에 취해 시인이 되는 산길·논밭길, 그리움과 설렘에 가슴 저리는 옛길·목장길, 맑은 바람과 맥반석에 기가 충만하는 과수원길·개울물길,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시장길·돌담길·골목길 등을 두루 거치면서 남도 특유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맘때쯤의 봄날에 딱 한 코스만 걸어보고 싶다면 울창한 동백숲과 파릇한 보리밭을 끼고 가는 1코스가 제격이다.

18년 기나긴 유배생활 담긴 길… 4개 코스로 나눠

1코스의 출발지는 근래 지어진 다산수련원이다. 다산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는 다산유물전시관(061-430-3782)과 인접해 있고, 깔끔한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다산 유적지 답사여행의 베이스캠프나 다름없다.

다산수련원에서 다산초당까지의 거리는 6백 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을 만큼 짧은 길이지만 두충나무숲길, 솔숲길, 대나무숲길, ‘뿌리의 길’ 등 다양한 느낌의 길을 지나야만 다산초당에 당도하게 된다.

다산이 10여 년 동안 머문 다산초당은 애초에 허름한 초가였다. 그러나 1957년에 복원되면서 번듯한 와당(瓦堂)으로 바뀌었다.

1974년에는 다산의 처소였던 동암과 제자들이 거처했던 서암도 복원됐고, 애초엔 없었던 천일각도 나중에 세워졌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다산 생전의 것에 비해 더 커지거나 아예 없었던 것들이다.
 
하지만 초당 옆의 아담한 연못과 그 한가운데의 석가산, 초당 뒤편의 돌 틈에서 솟아나는 약천(藥泉), 솔방울을 태워 찻물을 끓이던 바위인 다조(茶 ), 해배(解配·귀양이 풀림)를 앞두고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집 뒤편의 암벽에 다산이 손수 쓰고 새겼다는 ‘정석’(丁石)이라는 두 글자 등은 다산의 정성과 손때가 묻어 있는 자취들이다.

또한 천일각이 세워진 자리는 다산이 흑산도로 유배 간 형을 그리며 강진만을 굽어보던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 서면 강진만의 평화롭고 아늑한 풍광과 그 건너편에 우뚝한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이 시원스럽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사이에는 만덕산의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오솔길이 나 있다. 다산과 백련사의 혜장 스님이 서로 오가며 정을 나누고 학문을 논하던 ‘우정의 길’이다. 그러니 이 길은 역사유적이나 다름없다.

키 작은 수목들 사이로 강진만 바다가 언뜻언뜻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서 만덕산의 산허리를 20여 분쯤 걸으면 ‘백련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51호)에 들어선다.

총면적이 1만2천8백93제곱미터인 이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숲의 하나로 손꼽힌다.

1천5백여 그루의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 고목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동백꽃 만발하는 춘삼월이면, 동백숲에 홀로 선 부도와 목이 부러지듯 뚝뚝 떨어져 뒹구는 동백 낙화의 조화가 섬뜩하리만치 아름답다.

또한 핏빛보다 더 붉게 핀 동백꽃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강진만 바다 풍광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을 장관이다.

백련사와 동백나무숲을 품은 만덕산은 해발 4백8미터의 작은 산이다. 하지만 산정에는 울퉁불퉁한 암봉이 연이어져 산세가 제법 우람하고 험준하다.

게다가 야생 차나무가 많아서 ‘다산’(茶山)으로도 불린다. 정약용 선생의 아호 다산도 거기서 따왔다고 한다.

만덕산 중턱에 자리한 백련사는 통일신라 때인 839년에 창건됐지만, 오늘날의 건물들은 모두 조선 후기에 중창됐거나 근래 새로 지어진 것들이어서 고풍스러운 멋은 없다.

그래도 동백숲이 좋고, 배롱나무 고목이 늠름하며, 바다 전망이 탁월해서 사시사철 어느 때에 찾아가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절집이다.

복원된 ‘사의재’ 들르면 메밀묵·동동주… 옛 정취 물씬
 
백련사 동백숲을 지나온 뒤로는 한동안 지루하고 딱딱한 포장도로를 걸어야 한다. 강진만 갯벌의 철새 도래지를 관찰하기 좋은 탐조 지점을 지나고, 덕남리의 제방길에 들어서야 비로소 발바닥이 편해지는 흙길을 다시 만난다.

덕남리 제방길은 길고도 지루하다. 약 3.4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의 풍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왼쪽에는 탐진강 하구와 갯벌, 오른쪽에는 파릇한 보리밭이 펼쳐지고, 앞쪽에는 강진읍내가 아스라이 보인다. 게다가 사방으로 훤히 트여 있어서 소소리바람 부는 봄날이나 햇살 뜨거운 여름철에는 걷기가 만만치 않을 성싶다.

고속국도처럼 반듯한 제방길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남포마을을 지나면 다산이 한때 머물렀던 목리마을이 지척이다.

목리마을부터 강진읍내의 사의재와 영랑 생가까지는 시골 소읍의 소박하고 정겨운 골목길이 이어진다.

사의재는 근래 복원된 건물인데도 퍽 예스럽다. 더군다나 시장한 길손들에게 비빔밥, 메밀묵, 파전, 동동주 등을 파는 실제 주막을 겸하고 있어 옛 정취가 가득하다.

사의재에서 경찰서, 군청 등의 관공서들이 몰려 있는 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영랑 생가 입구에 당도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시인인 영랑 김윤식(1903~1950)은 여전히 단정하고 고요했다. 집 뒤란의 커다란 동백나무는 핏빛보다 더 붉은 꽃부리를 가득 뿌려두고 있었다.

하지만 내내 다산의 자취를 더듬다가 문득 들어선 영랑의 옛집은 낯설게 느껴졌다. 모란꽃 만발한 5월의 풍성한 풍경을 떠올리며 영랑의 옛집을 나섰다.


여행 정보

코스 정보
▶ 1코스(사색과 명상의 다산 오솔길)│총길이 15킬로미터, 5시간 소요. 다산수련원→다산초당→백련사→철새 도래지→덕남리 제방길→남포마을→목리마을→강진 오일장→사의재→영랑 생가
▶ 2코스(시인의 마을 길)│총길이 13.4킬로미터, 4시간 30분 소요. 영랑 생가→보은산방(고성사)→솔치→금당마을(백련지)→성전 달마지마을
▶ 3코스(그리움 짙은 녹색향기 길)│총길이 16.6킬로미터, 5시간 30분 소요. 성전 달마지마을→무위사→안운마을(백운동)→강진다원→월남사지→월남마을→누릿재→영암 천황사
▶ 4코스(월출산 기 충전 길)│총길이 16.5킬로미터, 5시간 소요. 천황사→월출산 기찬묏길→기건강센터→월출산 기찬랜드→도선암지→왕인박사 유적지→구림마을→영암 도자기박물관
※ 문의 전화│다산수련원(061-430-3786), 강진군청 관광개발팀(061-430-3224),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061-470-2253)

 
숙박

1코스의 출발지인 다산수련원(061-430-3786)은 단체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로도 이용하기 좋은 숙박시설과 식당을 갖췄다. 강진읍내에는 가필드모텔(061-433-1212), 보금모텔(061-433-4765), 프린스관광모텔(061-433-7300), 벨라지오모텔(061-433-0570) 등 모텔이 많다. 다산초당 아래의 다향소축(061-432-0360), 다산명가(061-433-5555) 등에서 민박이 가능하다.

맛집
강진읍내에는 청자골종가집(061-433-1100), 흥진식당(061-434-3031), 해태식당(061-434-2486), 명동식당(061-434-2147) 등과 같이 전남도에 의해 남도음식 명가나 남도 별미집으로 지정된 한정식집이 많다. 그 밖에도 강진읍내의 화경식당(백반·061-434-5323), 강진읍 외곽의 목리교 부근에 위치한 목리장어센타(장어구이정식·061-432-9292) 등도 괜찮은 맛집이다.

가는 길
▶ 승용차│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1번 국도)→석현삼거리(좌회전·2번 국도)→영산강 하굿둑→남포교차로(우회전·18번 국도)→호산삼거리(좌회전·다산초당 방면)→다산수련원
▶ 대중교통│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강진행 고속버스가 07:30 ~17:30 사이에 하루 6회 출발한다. 강진 버스여객터미널(061-434-2053)에서 다산수련원과 다산초당 입구를 지나는 군내버스는 하루 8회 운행. 택시비는 1만~1만1천원 선.

이형섭 기자  070@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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