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23.9.22 금 10:26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필리핀 호프미션 졸업을 앞둔 유학생들의 과거 ㆍ현재ㆍ미래 이야기18기 김다희 (천안)] 호프를 마치며
김다희 | 승인 2023.05.25 23:30
2021년 3월 16일 ~ 2023년 6월 1일 (807일간의 여정)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2021년 꽃샘추위로 서늘한 바람이 불던 3월의 봄날, 제주도에서 18기생 ‘김다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23년 6월 필리핀에서 호프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금 이 이야기는 호프, 김다희 그리고 하나님께서 써내려 가신 이야기다.

총 6부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글이다. 나의 807일을 담아내기엔 현저히 짧은 분량이지만, 그 안에 나의 진심을 알뜰히 녹여내고자 한다. 지금부터 나는 진중하고, 진실된 나의 솔직한 호프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 1부 - 나는 전교 1등 김다희입니다>

나는 어느 가정집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자라왔다. 그런 나의 평범한 일상은 중학교 시절부터 점점 어긋나기 시작했다. 2017년 중학교에 입학하여 보았던 첫 시험에서 나는 전교 30등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 걸까, 앞반에는 전교 1등이, 같은 반에는 전교 9등이 함께 있었다. 그들과 나를 대하는 비교되는 대우들은 내가 받은 나의 성적으로 기뻐하기를 멈추게 했다.

나를 기대하고 보시던 선생님들과 어른들의 눈빛은 변했고, 나는 그 시선과 바뀐 태도들에 적응하는 기간들이 고통스러웠다. 그때 마주했던 세상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 큰 상처였으며, 나를 변질되게 하는 각성제가 되었다. 그때부터 죽어라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전교 1등에 자리에 올라, 1등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또한 1등으로 입학하게 된다. 1등은 내가 지켜야만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양보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그 자리를 뺏기면 죽어야 한다는 각오로 공부했다. 하루에 커피를 20잔도 모자라 원두가루를 씹어 먹기 시작했고, 이 결과로 매일 위경련 약을 달고 살아야 했으며, 시험 기간이면 찾아오는 공황과 스트레스로 정신과에 다니며, 그렇게 병원, 학교, 학원, 집을 오고 가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고,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겨울방학을 맞이하기 전, 참을 수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내 앞길을 막았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엔 내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 공부였기에, 그 끝엔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그 날밤, 나에게 8년전 12기 캠프를 통해 만났던 호프가 생각났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간이 가진 따뜻함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던 호프는 그 당시 나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호프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제 2부 - 안녕하세요, 김다희입니다 ; 진짜 나의 모습>

호프 유학을 결정한 기간은 단 3일이었다. 12기 캠프를 했을 때, 유학을 반대하시던 부모님도 많은 반성과 후회를 하시며, 나와 함께 호프호에 승선하셨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8년 만에 호프를 다시 만났다. 비록 필리핀의 블루 게이트가 맞이해주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호프는 여전히 따뜻했고, 인간미 있었고, 행복이 가득했다.

나를 반겨주던 여러 웃음소리와 행복한 미소들은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그렇게 나의 호프 유학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네가 선택한 호프를 후회한 적 없지?”

위 질문에 대한 답은 과연 긍정이었을까, 호프를 만나고, 6개월이 지난 시점 위와 같은 질문을 들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이 질문에 나는 부정을 답했다.

“아니요”

호프는 하나 둘 나의 껍질을 벗겨냈다. 껍질이 벗겨지며 마주했던 나의 속은 처참했고, 수치스러웠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문제와 싸우는 힘을 배우게 하는 호프이기에, 나의 본질적인 문제와 부딪히게 했다.

모범생, 전교 1등, 다재 다능한 아이, 선생님들이 사랑하는 아이라는 타이틀 속 감추어진 나의 내면은 볼품없었다.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게 무섭고 두려워서 후회한적 있다고 답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후회했던 순간은 지금 내가 가장 많이 후회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 나는 인간관계에 참 무심했다. 초등학교 때는 사람을 정말 좋아해서 사람을 많이 따르고, 좋아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점차 다른 사람과 나의 사이에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친구의 정의는 그저 나와 같은 나이의 학생이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친구의 안부보다 성적이 더 궁금했고, 나의 공부하는 습관, 루틴, 다니는 학원, 푸는 교재부터 가지고 있는 고민들은 007처럼 지켜야 하는 1급 비밀들이었다.

이랬던 나에게, 모든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될 수 있는 호프는 그동안의 나의 인간 관계를 해왔던 방식을 되돌아보게 했다.

전교 1등, 모범생, 공부 잘하는 학생,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이라는 타이틀로 사랑받고 관심 받을 수 있었던 나였지만, 호프에서는 그런 나의 타이틀을 통해 나와 친해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나의 내면의 모습에 집중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타이틀 말고는 보여 줄게 없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래서 끝까지 나를 포장하고, 숨기려고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나는 나의 내면의 모습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많은 상처와 흉터, 멈추지 않는 피가 흐르는 나의 모습을 만났다. 나조차도 나를 품어주고, 알아주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를 쌓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호프는 나에게 끊임없이 나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었고,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닌, 나의 내면의 모습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호프에서 나는 진정한 나로서 다가갈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나의 한계가 깨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의 내면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은 뒤로도 끊임없이 나는 아직도 보여지는 나의 모습을 신경 쓰고 있었고,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목사님께선 늘 사랑으로 신경 쓰고 계셨다. 목사님께서는 이런 나의 한계에 대해 강하고 분명하게 미팅을 이끌어 나가셨다.

3시간가량의 미팅 동안 나는 나의 내면의 문제에 수도 없이 직면했다. 처음이었다. 늘 모든 어른들은 나를 칭찬해주시고, 예뻐해주시고, 사랑해주셨다. 그게 전교 1등이던 내가 받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러나, 그날 목사님께서는 그런 어른들 중 한 명이 아닌 나를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을 가진 어른으로 다가오셨다.

“넌 아직도 겉으로 보여지는 너에 초점을 두고 살고 있어. 호프는 전교 1등 김다희가 아니라, 그냥 김다희를 보기를 원해.”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고쳐진 줄만 알았던 나의 한계가 아직도 나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고, 미팅 내내 스스로 부정했다.

그러나, 미팅이 끝나가며 알았다. 그렇게 호프를 통해 나의 진정한 모습을 마주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부족해서 망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전교 1등 김다희가 아닌, 걱정도 많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 표현에 서툰, 매일을 열정으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그런 김다희를 마주했던 그 미팅의 순간과 그 이후의 순간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감사였다.

하지만, 호프는 그리고 목사님은 조금은 서툴고 실수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을 느끼는 내가 진짜라고 말해 주셨다. 나의 내면에 마주하며 느낀 부끄럼움으로 인한 후회가 진정한 감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해왔고, 하는 중이며, 할 예정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과 수수한 옷을 걸친 조연배우들이 있는 무대가 아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무대를 주인공으로서 각자 누비고 있다.

다양한 섬김의 자리(방장,학년장,마니또), 축복의 기회, 만남의 과정들 속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약한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마주하는 시간들을 거친다.

그리고 호프는 그 시간들 속 각자의 한계에 마주하게 한다. 내가 겉으로 보여지는 나의 모습만을 가꾸려 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나의 한계를 마주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 시간 뒤 마주하게 될 나의 모습은 찬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호프는 알게 했다.

<제 3부 - “실수투성이 김다희, 성공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실수들을 직면하는 것이었다.

완벽하기만 바랬던 내 인생의 실수는 곧 실패였다. 그리고 그렇게 실패한 나에 대한 채찍질은 늘 따라왔다. 실패가 싫어서 나의 실수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나의 문제와 나의 한계들을 외면하기 바빴다.

부족하고 연약한 것이 인간이고 그렇기에 완벽할 수가 없는 인간인데, 거만하고 자만하게 생각했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도전이 가능할까?”

호프 생활을 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었다. 호프는 나를 마음껏 넘어지게 했고, 실수 하게했다. 처음엔 쏟아지는 나의 실수들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수마저 용납하기 힘들었던 내가 과연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 만나야 하는 실패들을 감당하수 있었을까?

그것들을 두려워서 피하다 보니 도전하는 학교인 호프에서 조차도 주춤하는 나의 모습을 마주했다.

쉐어링 하나를 준비하는데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긴장한 채로, 입술이 파래져서 하루를 꼬박 연습하고 올라가야 했고, 그렇게 했던 쉐어링에서도 실수가 하나 생기면 무대에 내려와서 손을 떨며 아쉬워하기를 바빴다.

유학한지 4개월차의 미니 패밀리 데이에서의 나의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없이 해내는 것이 나의 기준에서는 완벽한 무대였으니, 당연히 그 무대들이 성에 찰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것은 기쁨이나 벅참이 아닌, 아쉬움과 공허한 마음이었다.

목사님께서는 당시, 보여주고, 누군가를 표면적으로든, 이면적으로든 이기기 위해서 하는 무대는 후회와 공허함만 남지만, 행복해서, 기뻐서 그 감격이 흘러 넘쳐 하는 무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무대를 하게 되면 그 결과는 행복이며 감사라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땀이 삐질 삐질 흘렀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그 동안의 나의 삶 속 무대들을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기 위한 무대였으며, 그렇기에 실수와 실패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부분에서 조차도 실수하기를 두려워하니 당연히 더 큰 부분에서의 실수들 앞에서 무너지기 일수였다.

이 마음의 울림을 바탕으로 이런 작은 순간들 안에서의 실수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호프에서의 이벤트 들에서 엠씨를 맡을 때, 긴장하며 떨기보다는 기회를 받았음에 감사하며, 그 감사와 벅참의 마음만 가지고, 여유로서 실수를 대처하고, 그런 나의 순간들마저 사랑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의 연장선으로 2022년 패밀리데이를 마주했을 때, 나는 감동 감사 감격의 절정을 느꼈다. 100% 학생들이 만들어낸 무대였기에, 무대 사이 나타나는 실수들, 방송 사고들, 본 공연에서 보여지는 실수들은 당연했다.

실수에 초점을 두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을 즐겼고,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행복했다. 실수가 없어서 성공한 무대가 아니라, 그 순간 내가 행복했는지, 감격했는지, 감동했는지가 성공의 기준이라는 것을 배웠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저 공기계 남용을 해서 20만원을 내야 해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스웠던 그때 그 시절 김다희다. 그때 당시 나를 이해할 순 없지만, 순간의 쾌락에 빠져 뭐가 잘못되었는지 잘하는건지 분별할 수 없었다.

과거의 김다희라면, 이 잘못을 어떻게든 덮고자 어떤 수라도 썼을것이다. 이것은 나의 부끄러운 부분이고, 치부가 될 수 있으니 잘못을 인정하기 보단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달랐다. 나의 잘못을 인정했고 나의 한순간의 쾌락으로 인한 실수를 받아들였다.

“그 20만원이 너가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걸로 됐다”

아빠의 말씀이셨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났다. 부모님 앞에서도 실수한 부분들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박박 우기기만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나의 실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빠의 이 말씀은 내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실수를 숨기기만하고, 완벽하게만 보여지고 싶어하는 내 지난 날들은 사실 내가 가장 중요한 인생의 기본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실수를 받아들이고,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은 내가 완벽해지지 못하는 순간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을 수 있는 기회임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11학년 비전트립때 목사님께서 저녁 미팅당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극복해야 하는 한계에 대해 말씀해 주신 부분을 공유하고 싶다.

“아직까지도 보여지는 것에 초점을 두니,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에 서툴다”

앞서 나눴던 나의 한계와의 연장선으로 나를 깊이 후벼 파는 말씀이셨다. 차근차근 극복해 나가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도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잘하는 것만 선택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웠다. 11학년에 올라가며 학년장 자리를 맡게 되었을 때, 실수한 나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앞에서 이끌기보단 뒤에서 주춤했던 시간이 길었다.

완벽한 모습의 학년장으로 다가서길 원했고, 리더라는 자리가 어쩔 수 없이 실수하며 배우는 자리이고, 그 실수를 통해 다른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러한 경험들을 팔로워들과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자리임을 알려주는 호프의 가치 앞에 머뭇거렸던 순간이었다.

“호프 짬밥이 부족하다.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나의 한계들이 있다”

내가 수도 없이 스스로 되뇌었던 핑계들이었다. 이 핑계들을 가지고, 나는 실수할 수 있었던 순간들, 넘어질 수 있었던 순간들을 외면하며,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순간 목사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셨다.

“너는 문제가 없는데 왜 있다고 생각하면서 힘들어해?”

가슴이 뻥 뚫리는 질문이었다. 위에서 내가 만들었던 그 어떤 핑계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허상의 걱정들이었던 것이다.

누군가 내가 18기이고, 학년에서 가장 짬밥이 부족하다고 비난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한계들은 이미 내가 인지하고, 부수고 극복해 내가고 있는데, 해결 과정 중에 있는 문제들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며, 주춤했던 것이다.

절대 완벽해서 맡게된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완벽하기 위해서 나의 실수의 순간들을 나의 문제고, 한계라며 단정지으며 오히려 주춤했다.

그렇게 도전하기를 꺼려했던 그때 나의 모습은 참으로 어리석었다.
나는 그때를 기점으로, 마음껏 실수하기 바빴다. 방장, 학년장의 자리에서, 언니의 자리에서, 동생의 자리에서, 행사의 엠시자리에서, 쉐어링을 하는 순간 등 모든 순간 속에서 나의 실수는 빛을 냈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더하여, 그런 순간들이 가장 소중한 순간이고, 지금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알았다. 성공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실수하고 실패하며 행복을 위한 행복의 경험을 쌓아 올리는 것임을 배웠다.

나를 성장시키는건 완벽하게 계획대로 옮겨진 상황이 아닌, 미숙하고 돌발적인 상황이다. 나는 오늘도 실수를 행복하게, 마음껏 그렇게 받아들인다.

“실패는 없는거야. 오직 성공과 성공을 위한 경험이 존재하는 거야. 마음껏 실수하고 실패해”

이영석 목사님의 23년 3월 1일 설교 말씀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실수투성이 김다희, 오늘도 성공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제 4부 - 영적 리더쉽을 갖는다는 것 ; 사랑을 줄 수 있을까요?>

“저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당돌했던 호프 한달 차 김다희가 뱉었던 말이다. 그때 나에게 있어 리더의 정의는 앞에 보여지고, 생기부(생활기록부)에 한 줄 더 적혀 대학에 잘 갈수 있는 스펙, 모두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자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의 리더 자리를 향한 욕심은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이유에 둘러 쌓여 점점 커졌었다.

그러나, 호프를 살아가며 크게 느꼈던 그들과 세상의 리더의 차이는 “사랑”이었다. 사랑으로 다가오고, 사랑을 전제하에 교육하고 훈육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고, 기다림으로 함께 해주는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감정은 감사였던 것 같다.

이런 감정들과 함께 주변에 많은 리더 친구들과 언니오빠들과 함께 관계를 맺어 나가며, 리더라는 자리에 대해 간접적으로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한국에서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리더(반장, 부반장, 전교회장, 전교부회장, 동아리장 등) 라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동안의 그 자리들에 서있었던 나는 그 자리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며, 나의 진정한 마음과 사랑을 나누기 위함이 아닌, 스펙을 위해 군림했던 것이 아니었는가를 반성하게 했다. 누군가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감사를 말하고, 행복과 함께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준 그때 당시 리더들에게 고마웠다. 지난날들이 맞다고 생각하고 달려온 나에게 반성의 시간은 쉽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호프에서 크고 작은 자리에서 섬기며, 내 한계에 부딪히며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21년 여름, 18기로서 제주도 미니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18기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나는 기수장이 되었다.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참 쉽지 않았다. 호프에서 처음 경험했던 섬김의 자리였다. 18기 다른 아이들을 격려시키고 동기부여 해주기 보단, 그들의 단점을 보며 비난하고 화를 내기 바빴다. 보여지는게 중요했으니 당연히 내가 이끄는 이 집단은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사랑이 없는 리더쉽의 유통기한은 5일이었다. 5일이 지나니, 감사를 잃어갔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의 장점을 극대화시켜주기 보다는 단점을 바라보며 그들이 성장할 수 있을까라며 부질없는 잣대를 들이밀곤 했다. 이끄는 리더의 잘못보단 따라오지 못하는 팔로워의 잘못으로 100을 줘버렸던 과거의 내 모습이 부끄럽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사랑해주었다. 기다려주었고 함께 해 주었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 나와는 달리 긍정적인 부분을 보고, 서로를 챙기고 아껴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감정에 휘어 잡혔다.

리더는 완벽한 자리가 아니라, 조금 더 다른 시각에서 여러 방면으로 배움이 많은 자리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를 따라주었던 18기 동생들의 서툴지만 따뜻했던 서포트는 리더라는 자리에 대해 재정의 내리게 했다.

“리더를 해라. 리더를 하면서 호프에서 받은 것들을 나눠주고 가라”

11학년이 끝나갈 때쯤 목사님께서 나에게 리더를 제안해 주시며 하셨던 말씀이시다. 그때만큼은 앞에서 내가 정의 내렸던 리더가 아닌, 1년동안 호프를 살아가면서 느꼈던 리더의 정의에 대해 곱씹으며, 사랑, 섬김, 감사, 감동, 감격이라는 키워드를 계속해서 마음속에 되뇌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호프 인생 두번째 막이 열렸다. 팔로워때와는 또 다른 경험과 함께 또 하나의 성장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12학년 임원으로서 나의 호프 리더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새학기를 시작하며, 많은 신입생들이 몰려왔고, 이들에게 리더로서 줄 수 있는 도움은 정말 많았다. 그러나, 그 도움을 진심을 전제하에 기꺼이 나누어 주기엔 내 마음의 그릇이 너무 작았다. 억지로라도 사랑을하고, 진심을 주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 순간들 속에 많은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리더로서 부딪히는 한계들 안에 이런 사랑과 나눔의 마음이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외면하며 다른 나의 한계 집중했다.

동생들에게 다가가고 나의 사랑을 준다는 것은 내 컴포트존을 벗어나는 것과 같았다. 밥을 먹는 것도, 쇼핑을 하는 것도, 자유시간을 함께하는 것도,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늘 친한 친구들과 당연한듯이 시간을 보내왔던 나에게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기란 참 쉽지 않은 시도였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생들에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물어보고, 밥 약속을 신청해보고, 쇼핑을 함께 나가면서 그렇게 스텝을 밟아갔다. 그러는 과정 중에 느꼈던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동생들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내 마음을 나눠주고, 나의 시간을 쓰는 것은 낭비나, 의미없는 행동이 아닌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을 더 키우고, 내가 받은 호프를 나누어줄 수 있는 행복과 감사의 기회였다.

그렇게 동생들과 친해지며, 점차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그들에게 지혜를 나눠주고 그들과 함께 울며 기도해주고, 옆에서 늘 함께 있음을 알려주며 위로해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은 벅참이었다.
호프 리더로서 가장 크게 받은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눔의 기쁨과 사랑의 마음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이기적인 나에게, 이런 배움은 나의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를 만들었고,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마음이 넓고, 늘 사람들을 웃게해줘. 참 대단한 사람이야”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듣고 너무 기분이 좋았던 칭찬이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좋은 사람임을 알게해준것도, 마음을 넓힐 수 있었던 것도, 웃음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동생들이 없었다면, 리더로서, 12학년 언니로서도 이런 나의 마음을 나눠 줄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잘난 부분이 많아서 너희에게 나눠줄 수 있었던게 아니라, 너희가 있었기에 그 기회를 받을 수 있었어. 그리고 너희를 통해 또 한번 배울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어. 고마워”

그들은 나에게 받은게 많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야말로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배움을 얻었다. 리더라는 자리는 이기적인 나에게 배움을 나눠줄 수 있고, 사랑을 나눠줄 있는 기회이자 큰 선물이었다.

“제가 받은 호프에서의 사랑과 배움을 나눠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게하여주시옵시고, 다시 그들이 제게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선순환의 여자공동체를 위해 기도합니다”

리더가 되고 나서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드렸던 기도제목이다. ‘나로부터 시작되리’ 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내가 보였던 조금의 날개짓이 나의 행동과 마음가짐의 변화를 주었고, 그로 인해 뿌려진 씨앗들이 다시 꽃을 피우고 번식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이 기도 제목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이 작은 움직임이 선순환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에 참 감사했다.

“나라를 전쟁의 승리로 이끄는 왕은 백성들의 칭찬을 받고, 그렇지 못하는 왕은 욕을 먹으며, 능력없는 왕이된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뛰어난 왕은 백성들이 자신이 전쟁에서 이긴 순간 왕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왕이다”

영성 리더쉽(두란노)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을 읽고, 토요일 오후 자유시간 여자들이 북적북적 모여있는 펠로우쉽으로 눈이 갔다. 어느 순간 서로를 의지하고, 배려하는 공동체로, 자신들의 한계를 가지고 싸워나가면서 그렇게 혼자 만의 싸움을 묵묵히 해내주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토요일의 그 시끌 벅쩍한 펠로우쉽은 내 마음의 큰 울림이었다.
사실 이번 학기 몇몇 여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들이게 온 신경을 집중하며, 사랑과 관심의 마음들을 나눠주고 있을 때, 다른 여학생들을 여유를 갖고 한번 더 쳐다봐주고, 관심가져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러나, 그러는 과정 속 그들은 스스로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리더가 기회를 주고, 리더가 성장을 시켜주고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 아닌 어느덧 여자공동체를 이루는 여자들 한명 한명은 스스로의 삶의 리더가 되어있었다.
나에겐 리더의 도움이 있었음을 인지하고, 우리에게 고마워 하는 그들의 모습보단, 그렇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어나가며 성장해나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더 고마웠다.

세상의 리더가 아닌,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영적리더로서의 삶을 살았던 지난 1년은 나에게 무척 꿈같았다. 그 꿈 같던 시간들을 모두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움직이셨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기에 이겨낼 수 있었던 한계들이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내가 먼저 사랑의 씨앗이 되어 꽃을 피우고, 그 꽃이 다시 씨를 뿌리는 선순환의 공동체의 일련의 한 과정으로 있을 수 있었던 지난 날들이 참 감사하다.

<제 5부 - 내 안에 한계를 넘어 ; 끝나지 않은 한계>

“호프에서 1년 더 보내는 것은 어떻겠니?”

10학년 처음으로 호프를 만났을 때 목사님으로부터 왔던 제안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죄송합니다. 제 나이에 맞게 졸업하겠습니다.”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 급했느지, 어떻게든 이곳을 제 나이에 졸업하고 떠나야 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 이유의 중심에는 결론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남들과 다르게 뒤쳐지는 것 같고, 먼저 졸업하게 될 친구들을 보며 왜인지 모를 자격지심을 느낄게 뻔했지만, 이 이유를 들키기 싫어 멋진말들로 포장했다.

나는 충분하겠지라는 거만과 교만으로 가득차 있었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탈 없이, 제 때에 남들보다 앞서 내 삶을 준비시키는 과정을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목사님께서 끊임없이 재안해주셨지만, 그때마다 습관적으로 NO를 외쳤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목사님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을 11학년이 끝날 때까지는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위태롭고 나약했던 나인데 스스로를 강하다 생각하며, 그렇게 자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 거절로 인해 아직 나의 본질의 문제를 건들이지 않았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아야 하고, 남들의 시선 위에서 걸어가야한다는 나의 그 마음이 수면위로 들어나지 않았다는건 어찌보면 작은일처럼 보일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야기할 문제는 상당했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12학년이 되었다. 리더 생활을 병행하며, 나의 시각은 많이 넓어졌고 다른 것에 대한것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을 볼 수 있는 시야 또한 훈련받아 길러졌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숨겨놓았던 치명적인 한계들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 호프에서 유학한지 1년 11개월(12학년)쯤 되었을 때이다.

#네임벨류 #대학은갑 나는을 #남들보다 잘하자 #성공해서 행복하자

이 해시태그들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를 끝없이 괴롭혔다. 대학을 준비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점들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연세대 23학번 정치외교학과로 입학하길 원했다. 나에게 다른 학과와 학교는 안중에도 없었다.

재수를 해서도 안되고 무조건 23학번으로 들어갔어야만 했다. 그게 남들 보기에 괜찮을테니까. 내가 대학에 맞추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이 아닌 대학에서 요구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내 기준은 어제의 나?는 무슨,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이었다. 이 모든 굴레 속에서 나는 하루 하루를 죽어갔던것과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 씨앗은 12학년으로서 대학을 준비하는 나의 마음안에서 나도 모르게 꽃을 피워내 버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또 하나의 대학에만 목숨걸고 그 대학이 전부인것처럼 생활하고 있었고, 대학의 네임벨류만 바라보고 있었으며, 나를 알아봐주는 학교가 아닌, 내가 을인것처럼 나의 모든 것을 학교에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시선으로 경쟁의식과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여유가 없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이 전과 달랐던 점은 바로 지금 내가 잘못가고 있음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년전 거절했던 목사님의 제안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그 기회를 잡고 내 안에 한계를 호프에서 여유를 가지고 차근 차근 깨나가고 싶었다.

지금 졸업하기엔 내가 너무 부족해보였고, 아직까지 호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호프 가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헛된 고민들로 가득찬 그때의 내가 참 싫었다. 그래서 곧장 목사님을 찾아가 내 문제들을 고백하며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호프에서 1년 더 지내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다.

“또 문제가 없는데, 문제라고 생각하고 힘들어 하네. 고민 할 수 도 있고, 생각 할 수도 있지. 그렇게 열심히 고민도 좀 하고 그러는거지. 그럼 이제 그게 문제라는거 인식했으니까 됐네, 안하면 되겠네”

그렇다. 호프에서 내가 배웠던 가장 큰 부분들 중 하나. 조금은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더디지만 꾸준히 나아가기.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한 직설적인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때 당시 나의 마음에 큰 위안을 준 말씀이었다. 대학을 준비하면서, 나의 본질적인 한계를 마주했지만 나는 그 한계들을 이겨낼 힘을 길렀고, 주님과 함께한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과거의 나와 같은 문제로 마주했지만, 그 문제를 다루는 내가 달라졌음을 확신했다.

“가라, 너라면 호프를 나가서도 잘할 수 있을거야. 모든 한계를 호프에서 다 깰 수는 없지만, 그렇게 호프 밖에서 만나게될 한계를 극복할 힘이 너에겐 있어”

조금 더디지만 천천히 가보기로 했다. 처음 호프에서의 1년 더를 제안 받았을 때보다 훨씬 성장한 나임을 확신시켜주셨다. 그런 나임에도, 스스로 못 믿고 주춤하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모습으로 졸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난 확신한다. 2년전의 나보다 발전된 지금의 내가 있듯이, 앞으로 나의 진화는 얼마나 무궁무진할지 기대가 된다. 조금은 단순하게 생각하며 지금껏 나와 함께 계셨던, 그리고 앞으로의 나와도 여전히 함께하실 주님을 믿으며 나아가기로 했다.

비록 호프를 다른 친구들에 비해 짧은 기간을 지내다가 떠나는 것은 아쉽지만, 그 807일간의 훈련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기에, 어제보다 조금은 성장한 내 자신을 믿으며 그렇게 가보려고 한다.

그렇게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을 때, 미국 비전트립이 생각났다. 나의 한계를 넘어섰던 첫번째 순간 그리고 그렇게 배웠던 시간들을 다시금 되뇌일 수 있었다.

호프 인생에서의 첫번째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그때의 짜릿한 전율은 12학년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새롭게 다가왔다.

“대학으로 내 이름을 알리는 사람이 아닌, 나의 이름으로 나를 알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당찬 말투로 내뱉었던 그때의 포부가 떠올랐다. 미국 비전트립은 호프에서의 2년 3개월 동안 나의 방향을 잡아주었던 좋은 기회였던 만큼 배웠던게 많았다.

“성적이 다가 아니에요, 진정 대학이 원하고 궁금해하는건 당연히 얼마나 잠재력있는 사람인지, 당신이 어떤사람인지에요”

그것이 당연한듯 말하는 하버드, MIT, NYU의 학생들의 말들로 깊은 감동을 얻었다.

대학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나를 끼워맞추며 그렇게 내가 잃어갔던 나의 고유한 색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지금 이 시기에 대학을 가겠다고 나를 녹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초를 닦으며 나아갈때, 내가 쌓은 그 기본과 기초를 알아봐주는 대학이 정말 좋은 대학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를 키워주고,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그런 대학. 대학은 나를 치장하고 아름답게 하는 악세사리가 아니다. 큰 학문을 배우기 위해, 차근 차근 밟아야하는 일련의 한 과정일 뿐이다.

이 모든 배움은 내가 미국 현장에서 직접 느낀 생생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경험들은 대입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마음 깊은 울림을 주고, 방향을 잡아준다.

호프에서 끊임없이 마주했던 나의 본질적인 한계들은 이렇게 여러 경험들을 통해 깨부수어졌다. 아직도 수많은 한계들 앞에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호프 안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한계들을 비롯해 앞으로 만나게 될 시련과 한계들 앞에 기꺼이 나는 나아간다. 그리고 고백한다.

“내 안에 한계를 넘어, 나는 오늘도 다시 일어서서 갑니다”
<제 6부 - 내가 사랑했던 호프 ; 호프를 마치며>

필리핀 알라방이라는 도시에서 용인외대부고 입시 설명회가 열렸다. 소수의 인원이 참여했지만, 메인으로 말씀해주신 용인외대부고의 입학홍보장 조경호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설명회를 이어나가 주셨다.

처음에 이 입학설명회에 가게될 기회를 잡았을때는, 한국에서 늘 듣던 입학설명회가 얼마나 달라졌을까가 궁금하기도 했고, 현 한국의 상황도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용인외대부고는 현재 한국 1위 고등학교이다.

인서울 대학을 넘어서 아이비리그까지 졸업생들을 내보내는 글로벌한 학교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였다. 이 입학설명회의 결론부터 이야기 하고 싶다.

“호프의 교육은 전세계를 이끌 최고의 교육이다.”

입학설명회에서 조경호 선생님께서는 어떻게하면 한국대학에 잘갈 수 있는지 지름길을 알려주시고자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대학 입학에 있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놀이터와 시간을 정해주고, 그 안에서 어떤 것을 하든 그것은 학생의 마음이라는 놀이터 이론과, 학생이 주인이되어 학교를 이루어간다는 부분에서 참여했던 호프인들은 입을 벌리고 놀랐다.

더하여, 대학에 나를 맞추는것이 아닌, 나를 알아봐주는 대학을 만나야 한다는 부분, 네임벨류는 의미 없는 랭킹이며 그 학교의 수준은 그 학교를 이루는 학생들이 결정한다는 설명은 호프의 가치와 너무 닮아있었다.

한국의 1위 고등학교가 호프의 가치의 일부를 가지고 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가지게 했다.

더불어, 호프의 가치와 교육의 다시한번 더 확신할 수 있었다. 호프의 가치 중 일부 정도만 가지고 있는 용인외대부고도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데, 훨씬 더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호프의 가치를 매일 받는 우리는 얼마나 더 성장하고, 얼마나 더 단단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기대하게 했다.

그렇게 과정에 최선을 다한 후 얻어낸 결과로 그들은 한국을 떠나 자신들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달리 정말 우리의 본향인, 한국을 살리겠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미션과 비젼을 가지고 간다.

개인을 위한 삶이 아닌, 나라를 위한, 미래를 위한, 하나님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감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단단하게 뿌리내려가고 있는 각자만의 비전과 사명은 호프에서의 훈련들을 졸업 후 더욱 빛나게 할것임을 확신한다.

이렇듯, 그날 하루의 경험은 한국에 아직 남아 있는 희망의 불씨를 더 지피는 매게체 역할을 하게 될 호프인들의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하루였다.

이처럼 호프는 앞서나가는 교육을 먼저 앞서서 하고 있다. 학생들이 판을 치고, 각자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큰 활약을 하게 해준다.

마음껏 도전하며 그 속에서 만나게 될 험난한 산의 꼭대기를 점령하게 한다. 그리고 그 산을 내려가는 과정을 실패라 표현하지 않고, 또 다른 성공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완벽한 모습으로 모두에게 다가가고자 했지만 속이 텅 비어있는 내 자신과 마주하게 했고, 조금은 더디지만 그 빈칸을 채우며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여러 한계에 마주하는 과정 속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게 해줬다. 끊임없이 내려가기만 하는 것 같은 내 인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지하게 했고, 그 과정들을 또 다른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라는 것을 알려줬다
.
더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을 섬김하는 것의 기쁨과 감사를 알게해준 학교다. 이게 바로 내가 사랑했던 호프다.

오늘도 호프에서는 고유한 색을 가진 이들이 모여, 그들만의 챕터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의 마지막 챕터에 와있다. 그 책의 마침표를 찍을 때, 나는 웃는 모습일까, 조금은 아쉬운 모습일까,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그게 어떻든 나의 호프에 대한 확신 가득한 표정임은 분명하다.
각자의 시간 속 각자의 속도대로 초침과 분침을 움직이며, 오늘도 앞으로 나아가는 호프인들을 응원한다.

“내가 사랑했던 호프에게, 호프를 마치며”

<이 글을 마무리 하며>

끝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2년 3개월의 시간은 그 어떤 시간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소중했고 아름다웠다. 서툴었던 나, 실수했던 나, 행복했던 나, 아름다웠던 나, 즐거웠던 나, 눈물도 흘렸던 나. 모든 순간 속 온전히 “나”로 존재하게 해준 호프는 나의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다.

그런 호프를 뒤로하고 세상에 나가려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이별해야한다는 슬픔의 감정이 나타나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졸업보다 뿌듯한 순간이다.

“해냈어”

이 말을 쉽게 건내기가 어려웠던 지난날들이다. 늘 뭔가 부족하고 공허한 마음. 그러나, 지금은 꽉차 있는 감사 감격 감동과 함께 벅찬마음으로 앞으로를 위해 한걸음을 옮긴다.

“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8살, 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을 직면했을때 호프가 있었기에 그 산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런 나를 걱정하는 마음 반, 기대하는 마음 반으로 호프에 보내주신 부모님께 먼저 감사하다. 호프호에 함께 승선하여, 나와 함께 부모님들께서도 수많은 파도를 만나셨고, 그 파도 가운데서도 호프를 놓지 않고 호프를 통해 함께 항해하며 나아가주셨음에 감사하다.

부족한 부분 많고, 해결해야할 문제도 많은 우리 가족이 호프를 통해 그 문제들을 인지하며, 함께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호프와 함께 달려갔다.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함께 해준 부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께서 호프를 신뢰하고, 호프를 호프 자체로 보기까지 정말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으셨다. 처음엔 다연이와 내가 호프에서 한계 앞에 마주할때마다 호프를 통해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닌, 우리를 통해 호프를 보며 호프에 대한 신뢰를 100퍼센트 주시지 못하시는 부모님을 볼때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여러번의 넘어짐을 통해 나와 함께 단련되고 부딪히며 깎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했다.

지금은 정말 호프를 전적으로 믿고, 그런 호프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감사를 말하고 계시다.

사실 아직도 부족한 부분 많다고 고백하시지만, 그런 부모님의 부족함 마저도 나와 함께 채워주고 단련시켜줄 호프가 있기에 걱정 없다.

이렇게 나의 여정을 뒤에서만 지켜보시는게 아닌, 함께 뛰며 함께 막히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며 여정의 동반자로 함께 성장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7년이라는 공백 속에도 오랜만에 호프를 찾은 나를 잊지 않으시고, 내 이름을 환하게 부르시며 반겨주시고, 늘 나의 호프 인생 속 지혜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목사님과 사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이영석 목사님과 박미순 사모님과 같은 스승님을 학창 시절 만난건 가장 큰 행운이며 감사이다.

인생의 본질과 기본이 무엇인지 알게해주셨고, 그 본질 속 마주하는 한계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해주셨다.

정말 많은 기회와 자리를 쏟아부어주시며, 매 순간 속 한계들을 넘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좋은 리더가 무엇인지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셨다. 단순히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 아닌, 팔로워들을 앞서 생각하고 팔로워들을 위한 판을 마련하여 팔로워들이 마음껏 그 상황을 통해 발전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임을 알게해주셨다.

807일, 짧은 기간이지만 이 기간동안 목사님 사모님께 받은 것들은 훨씬 더 많고 측량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싶다.

더하여, 가장 감사한 점은 목사님을 통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중심에 두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힘든 순간 다른 사람이 아닌 주님을 찾고 주님께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 그렇게 극복했던 시간들을 통해, 나는 지혜롭게 나에게 주어진 시련과 시험들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 앞에 믿음으로 선포하는 기쁨과 감사를 알게 되었다.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매일 말씀을 부어주시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무엇인지, 성경적 기준점을 잡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게 해주신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대학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선택을 하라고 말씀해주신 사모님께 감사하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것이었다. 대학을 선택하고 진로를 개척해나가는 과정에 있어 여러 기준들을 나열해보았지만 그 안에 주님이 없다는 것을 반성하게 해주셨다.

그리고 그 뒤로 이것은 나의 기도제목이 되었다.

“주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는 사람이 되겠고, 모든 진로와 비전을 주님께서 주신 사명가지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데에 쓸수 있도록 하게 해주세요”

매일의 고백이 된 이 기도제목은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었고, 미래에 대한 걱정보단 기대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 모든 간증의 시작이 되어주신 사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더불어, 매일 사랑의 마음으로 차려주시는 저녁은 이렇게 하루를 최선으로 살아가는데에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함께 해주었던 리더진과 지현샘, 예빈샘께도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1년 동안 가장 많은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늘 옆에서 지지해주고 함께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 나가 주었던 우리 리더 공동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하고 싶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각자의 리더쉽을 보여주며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매일 매일 마련해주었음에 감사하다.

주니어 리더, 시니어 리더할 것없이 각자 자신만의 역량을 끌어올렸고, 그렇게 그들이 보여주고 증명해준 그들의 능력은 각자 다른 곳에서 환하게 빛이 났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통해 배우고, 내 자신을 피드백하면서 그렇게 나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사감선생님들께서도 인생을 더 많이 산 선배로서 조언과 충고 그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주셨고, 우리가 미쳐 생각하고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정말 많이 혼났지만, 그 시간들은 다 감사로 가득하다. 그렇게 혼났기에 비로소 우리의 실수와 잘못들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 기회를 통해 우리는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 리더 공동체는 호프 공동체 다음으로 내가 잊지 못할 소중한 공동체이다. 사회에 나가서 살아갈 때, 이 공동체를 통해 배운 모든 것들을 잘 적용하면서 그렇게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겨나가고 싶다.

12학년 친구들과 앞으로 호프를 진화시켜나갈 동생들에게도 고맙다. 호프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호프에 잘 적응해나갈 수 있었고, 졸업을 앞둔 이 시점 앞으로의 호프를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호프의 중심을 이루는 그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나의 10대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20대의 첫페이지를 연 호프는 나에게 인생을 함께 살아갈 친구들을 선물해주었고, 사랑하는 동생들을 선물해주었다.

12학년 친구들에게, 처음 호프를 만난 그 순간부터 졸업을 준비하는 지금의 끝까지 나의 성장 발걸은을 함께 해주어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여러번의 마찰도 있었고, 서로 맞춰가며 많은 트러블도 있었지만, 끝까지 서로를 포기 하지 않고 그렇게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맞춰가줬음에 참 고맙다.

동생들에게, 덕분에 사랑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표현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전해주고 싶다.

내 덕에 힘을 내고, 날 의지할 수 있어 고맙다고 고백하는 그들이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게 내가 마음을 주는 법을 배우고, 나의 것을 나눠줄 수 있어 더 행복했음을 함께해서 감사했음을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를 호프로 이끄신 주님께 감사하다. 12기 캠프, 13기 캠프도 아닌 18기로서 나를 호프에 보내주신데에는 이유가 있었으셨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한국에서의 그 시간들이 참 많이 고되고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을 덕분에 호프가 더 간절했고, 호프에서의 매일을 통해 깨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숴졌던 순간들을 간증으로 고백하며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감사했다. 나의 잃어버린 7년 (13기 이후로 호프를 만나지 않았던 기간) 속 비록 주님을 외면하고 주님으로부터 돌아섰지만, 그런 나를 끝까지 놓치 않으시고 사랑의 마음으로 가장 밑바닥의 순간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다.

나를 기다려주시고, 늘 내 안에 거하시며, 마음껏 실수하고 실패하며 경험을 쌓고, 사랑의 마음을 배우게 하시고, 진짜 나를 마주하게 하시고, 그렇게 호프 안에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글은 정말 주님께서 쓰신 길이다. 나의 극복 과정 속에 늘 주님께서 함께하셨기에 가능했다.

호프를 마치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 글은 나의 호프가 계속됨을 알리는 글이기도 하다. 호프를 나가서는 이 글의 고백보다 얼마나 더 많은 깊은 고백들이 나올까 기대하게 된다.

호프를 마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김다희의 이 글은 또 다른 고백의 시작이다.

“주님, 저와 함께 출판사 ‘호프’에서 발간한 ‘김다희’라는 제목의 책을 함께 써내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승전결 어느 하나 완벽했던 부분 없었지만 그렇기에 완벽했던 나의 호프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써내려 가며 이 글의 마침표를 찍는다.나야 겠다는 생각만 했다.

김다희  newsasos@kakao.com

<저작권자 © 뉴스에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대표인사말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대로18길 9 (시흥동) 201호  |  대표전화 : 02-6083-0691   |   팩스 : 02-6406-0691    
이메일 : newsa@newsa.co.kr
등록번호 : 서울 아 01287  |  등록일 : 2008.05.09  |  발행인 : 정국희  |  편집인 : 이광원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사라
뉴스에이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3 뉴스에이.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