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Slow-city)란 1999년 10월 이탈리아의 몇몇 시장들이 모여 위협받는 ‘라 돌체 비타’, 즉 달콤한 인생의 미래를 염려해 슬로시티 운동을 출범시켰다. 슬로시티의 출발은 느리게 먹기인 슬로푸드와 느리게 살기운동으로 시작됐다.
 
우선 슬로(Slow)라는 말은 패스트(Fast 빠름)의 반대가 아니다. 환경, 자연, 시간, 계절을 존중하고, 나 자신을 존중하며 느긋하게 산다는 뜻으로, 앞을 향해 치닫고 살아온 지난 세월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슬로 시티(Slow city)의 구호가 있다. 한가롭게 거닐기, 남의 말을 잘 듣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을 찾기, 글쓰기, 명상하기 등 무한 속도 경쟁의 시대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여유를 갖자는 것이다. 그리고 슬로(Slow)에서는 불편함이 아닌 ‘자연과 인간이 서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느림의 미학, 슬로 시티(Slow city)는 왜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 깊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슬로 시티(Slow city)는 전 세계 16개 나라에 116개 마을이 있다. 우리나라는 2007년 말 아시아 최초로 전남 신안군 증도와 전남 완도군 청산도, 전남 장흥군 유치·장평면, 전남 담양군 창평면 등 4곳이 지정됐고, 올 초 경남 하동군 악양면이, 9월에는 충남 예산이 슬로시티에 추가됐다.

전남 신안 증도(염전)

신안군 증도면에는 우리나라 최대 갯벌 염전이 있다. 하얀 마분지를 바둑판처럼 선을 그어 접었다 펼친 듯한 염전 풍경은 전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볼거리를 자아낸다. 한 때 화학소금에 밀려 천일염, 갯벌소금의 생명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해 염전과 염부들을 천대해오기도 했다.
염전을 없애고 골프장을 만들자는 고위 공직자들도 있었지만 갯벌염전의 세계적 가치에 세계 슬로시티 연맹 본부 관계자들은 주목했다. 갯벌 염전은 세계 인류의 생명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 그 가치를 인정했다. 이것은 신안군 증도면이 슬로시티로 선정된 절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증도면에는 국내 유일의 소금박물관이 있다. 소금의 역사와 효용성, 가치 등을 단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의 소금창고를 개조해 소금박물관으로 만든 것은 슬로시티 정신과도 부합되는 것이라 하겠다.
실제 이 건물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소유주 입장에서는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 것이지만 인류의 공동재산인 갯벌염전을 지켜내고자, 천일염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이같은 선택을 자처했다고 한다.
이곳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짱뚱어다리다. 드넓은 갯벌을 가로지르는 길이 470미터의 다리로 만조시 다리를 건널 때는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썰물 때에는 뻘 위에서 펄쩍 뛰는 수많은 짱뚱어와 게가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르마늄 함량이 많아 피부노화 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해 이미 이곳의 갯벌은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소박한 일상과 평온해 보이는 어촌 마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남 완도 청산도

“왜 여기가 슬로시티가 됐지?”라는 물음이 필요 없는 곳이 바로 완도군의 청산면이다. 나지막한 지붕들, 밭과 집 사이에 대충 얹어 놓은 듯한 돌맹이로 쌓여진 돌담길,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주민들까지 마치 섬 전체가 전래동화책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의 젊은이들은 외지로 나가버려 가난한 섬이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반겨줄 것 같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들과 구들장, 논, 고인돌 등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촌스럽지만 그것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마을, 청정한 바다에서 슬로푸드인 전복, 해삼 농사를 짓고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다.

특히 세계슬로시티 연맹 본부 관계자들은 실사평에서 “완벽한 슬로시티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 최고의 슬로시티가 될 것이다. 특히 해녀는 매우 유니크( unique)한 문화재이니 해녀의 후진 양성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곳이 익숙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영화 <서편제>의 촬영장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 초가집과 마루에서 소리를 가르치는 아버지와 두 남매의 모습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방문하면, 고구마캐기 체험, 구들장 논벼 체험, 독살 체험, 조개잡이 체험, 해녀물길체험, 조개공예체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2008년 준공된 완도타워에서 다도해의 일출과 일몰 등의 해상 절경을 감상하는 것도 잊지 말 것. 장흥군 유치면과 장평면 일대에는 진정한 유기농법과 순환농법을 하고 있는 농가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곳에는 정겨운(?) 인분 냄새가 코를 찌르고, 여기저기 볏짚들이 흩어져 옛날 그대로의 건강한 농촌 모습을 보여준다.

장흥은 우리나라 최대의 표고버섯의 재배지로도 유명하고, 장평면 우산마을의 지렁이 생태학습장에서는 지렁이 배설물과 소의 배설물을 섞어 분변토로 만들어 친환경 유기 퇴비로 탈바꿈해 사용하는 친환경농법을 시행하고 있다.

친환경적인 유기농 논농사와 인근 산에 많이 자라는 참나무를 이용한 표고버섯을 주 소득원으로 하던 반월마을이 알려진 데에는 장수풍뎅이 역할이 컸다.

표고버섯을 키우고 난 후 남는 참나무 진액과 폐목을 톱밥을 먹고 자라는데 알에서 애벌레로, 번데기에서 성충까지 꼬박 1년이 걸리는 장수풍뎅이 사육은 마을의 주 수입원이다.
장흥은 또한 예로부터 문림의향(文林義鄕)의 고을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문인과 의병을 많이 배출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사문학의 효시를 이룬 발원지로서, 또 현대문학의 거장인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이 장흥이 배출한 작가들이다. 지식경제부로부터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신덕마을에 한옥민박단지가 조성돼 본격적인 외래관광객 맞이에 나선다. 11월 6일 신덕마을에서 박준영 도시자, 이명흠 장흥군수, 신덕마을 주민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흥 슬로시티 한옥민박단지 개소식>을 가졌다.

신덕마을 한옥민박단지는 총 8동으로 지난해 10월 첫 삽을 뜬지 약 1년여 만에 첫 결실을 맺었다. 이곳 농가들은 ‘착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유기농법과 순환농법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가고 있다.

생산된 표고버섯분말, 메주, 콩, 생약초환 등은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농촌의 아름다운 인심과 푸근한 정을 담아 나눠준다.

이형섭 기자  070@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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