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웅(객원 논설위원, 정치학박사)

“자유민은 동등한 신분을 가진 자가 행한 합법적 재판, 혹은 국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 감금, 추방, 재산 몰수와 어떠한 방식의 고통도 받지 않는다”

세계 최초로 인간의 권리를 문서로 명시한 대헌장(大憲章) 제 39조의 내용이다. 대헌장은 라틴어로 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 영어로는 자유대헌장(The Great Charter of Freedoms)이다.

대헌장은 영국에서 1215년 6월 15일 63개 조항으로 제정, 반포되었다. 올해로 만 8백살을 기록한 고전(古典)중에 고전인 셈이다. 영국 국립도서관은 대헌장 제정 기념일을 맞아 현존하는 원본 4점을 전시했다. 원본들이 한꺼번에 전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정부는 이 원본들을 엄청나게 귀히 여겨서 사흘동안 추첨을 통해 1,215명에게만 관람을 허용했다.

대헌장은 당초 국왕의 권한을 크게 줄이고, 귀족과 시민들의 권리를 대폭 늘리는 내용으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영국 부르죠아 혁명과 의회 정치, 법치(法治)의 기틀을 마련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헌장은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과 1791년 권리장전 제정, 1789년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유엔 총회가 1948년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에 핵심 내용이 반영되기도 했다. 대헌장은 영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신장하고, 헌법을 제정하는 당위성의 상징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오늘날 대헌장이 ‘영국의 가장 위대한 수출품’이라는 예찬이 나오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영국에서는 대헌장 제정 8백주년을 맞아 성문(成文)헌법을 만들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은 다른 나라처럼 법전으로 성문화된 헌법이 없다. 헌법의 내용이 의회법이나 관습법, 판례, 조약 등에 반영되어 있을 뿐이다. 왜 이 시점에 영국에서 성문 헌법을 만들자는 여론이 비등해진 것일까. 바로 나라를 하나로 묶을 정체성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가 분리 독립할 뻔했던 일은 영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대영제국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텨왔던 영국인들은 자국의 정체성을 밝혀줄 등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영국은 대헌장을 만들어서 전세계의 성문헌법이 제정되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제는 영국 자체가 성문헌법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헌장 제정 8백주년을 보내면서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내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연속으로 국회의원 총선거, 대통령 선거,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 세 차례 선거는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 나라로 갈 것인지, 나아가 통일 한국의 길로 성큼 나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같은 선거과정을 통해 무엇보다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정쟁(政爭)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국민 화합을 꼭 이뤄내야 하겠다. 우리 민주주의와 사회 전반을 선진화하는 골든 타임으로 가꿔내야 한다.

지난 6월 4일 유럽의회는 “북한의 인권 유린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의 연례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 국회는 ‘북한 인권법’을 10년째 계류 중이다. 미국은 북한 인권 관련법안을 2005년에, 일본은 그 이듬해에 각각 제정, 시행해오고 있다. 유엔은 해마다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해 왔다. 국제사회가 투명한 거울로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되겠다. 국회는 더 이상 머뭇거릴 새가 없다. 북한인권법은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연이은 숙청 사태를 저지하는 것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의무다.

이상호  sangho102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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